한국은 핵 모범생인데… 美, 북핵 잣대로 평화적 핵권리 차단
북핵에 발목잡힌 한미 원자력 협정
외교안보 부처의 한 전직 고위 관리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의 중요성을 이렇게 역설했다. 이번 협상을 통해 한국 경제성장의 주축이 돼 온 원자력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 확보와 기술 발달의 기회를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그만큼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호전적 핵 개발을 이유로 한국의 평화적 핵 권리를 확장하는 데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의 핵’ 그림자가 ‘평화의 핵’ 미래를 부당하게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한국 원자력의 토대를 쌓아 준 나라는 미국이다. 1956년 체결된 한미 간 ‘원자력의 비군사적 사용에 관한 협력 협정’이 한국 원자력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 최초의 원자력협정은 1974년 ‘원자력의 민간 이용에 관한 협력을 위한 협정’(한미 원자력협정)으로 대체됐다. 그 수명이 내년 3월에 끝난다. 한미 당국은 새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2010년부터 협상을 벌여 왔고 몇 개월 안에 결판을 내야 하는 것이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최근 한 연구서에서 “한국 정부가 추구하는 원자력의 지속적 활용과 원전 수출 확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중장기적으로 4대 핵심 과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 핵심 과제로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처분 방안 개발 △원전용 핵연료 공급의 안정성과 경제성을 위한 저농축 △원전 수출 경쟁력 강화 △에너지 안보를 위한 고속로 기반의 미래 원자력 시스템 개발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런 목표를 실현하려면 ‘40년 된 낡은 옷’인 한미 원자력협정이 시대의 변화와 한국의 국익에 맞게 개정돼야 한다. 한 정부 관계자는 “한미 원자력협정이 한국 원자력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해 온 것은 맞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원자력의 도약을 방해하는 족쇄가 되는 것도 맞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요구에 대한 미국의 거부감이 이번 개정 협상을 표류시키는 핵심 요소다.
한국은 “한국 같은 ‘원자력 모범생’에게 골드 스탠더드를 똑같이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 박근혜 대통령도 최근 미국 고위 인사 접견 때마다 “핵 폐기물 처리가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인 만큼 과제를 해결해 달라”고 촉구해 왔다.
○ 잘못 다루면 반미 감정으로 진화할 위험성도
올해 들어 미국에는 ‘새로운 핑계’가 생겼다. 3차 핵실험까지 강행한 북한의 핵 위협이다. 북한은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천명하고 최근 5MW 원자로의 재가동 계획을 밝혔다. 냉각 설비와 재처리 시설을 비롯한 영변 핵시설의 복구 등 남은 카드를 추가로 꺼내 들 개연성이 크다. 미국으로서는 한국에 재처리나 농축 중 하나만 허용해도 당장 북한이 형평성 문제를 내세울 반격의 빌미를 주게 될 것이란 주장을 편다. 미국 언론도 “한국에 농축이나 재처리를 허용하면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도 같은 권리를 요구할 것”이라며 이른바 ‘핵 도미노의 위험성’을 설파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