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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이헌진]중국 특색의 부패

입력 | 2013-04-08 03:00:00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한 지인의 집 보일러가 올 초 고장이 났다. 중국인 집주인은 보일러 수리기사와 앞으로 회사 서비스센터를 통하지 않고 서로 직접 연락하기로 했다. 집주인은 ‘직거래’를 통해 비용을 아끼고 기사는 수리비를 회사에 납부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챙길 수 있게 됐다. 이런 뒷거래는 중국 사회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중국에서 부패는 소수 특권층만의 일탈행위가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생활 속에 깊이 뿌리 내린 병리 현상이다. 명백한 부패지만 중국인들은 “얌체 짓을 좀 한다(占小便宜)”고 표현하며 부패를 부패로 보지 않는다. 최근 들어 이 같은 병폐가 사회 및 국가 발전에 심각한 장애가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워낙 넓고 깊게 퍼진 관행을 뿌리 뽑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심지어는 뇌물을 주는 것도 ‘예의를 차린다’는 미명으로 행해진다. 최근 인터넷에는 실상을 적나라하게 꼬집는 동영상도 나왔다. 중국에서 태어난다면 산타 할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출생신고, 학교 입학, 직장 구하기, 승진, 결혼, 출산, 질병치료 등 온갖 행사마다 선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역사에도 유명한 ‘부패 스토리’가 많다. 2000년 전 한나라 미녀 왕소군(王昭君)은 궁중 화가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흉노에게 시집갔다. 화가가 자신에게 밉보인 왕소군을 미모보다 밉게 그려 왕이 흉노에게 보내는 대상으로 선발해 버리도록 했다는 것이다. 청나라의 재상 화신(和:)은 부패로 처형될 때 국고보다 훨씬 많은 재산이 나왔다고 한다. 2년 전 철도부 부장(장관)은 조(兆) 단위의 뇌물을 받고 여러 명의 정부(情婦)를 두다 낙마했다. 오죽하면 저명한 학자 왕야난(王亞南)이 “중국의 역사는 부패의 역사”라고 평가했을까?

중국 특색의 부패를 뿌리 뽑기 위해 온갖 수단이 동원됐다. 가장 잔혹한 수단을 썼던 이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일 것이다. 그는 탐관오리를 처형한 뒤 가죽으로 박제를 만들어 관청에 세워 놨다. 하지만 명나라도 결국 만연한 부패에 농민들이 들고일어나면서 무너졌다.

현재 중국 대륙에는 부패 척결의 깃발이 높이 올랐다.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는 지난해 11월 취임 일성으로 부패 척결을 다짐했다. 공직자부터 허례허식을 줄이고 근검절약하자는 솔선수범의 메시지를 보냈다. 공직자 밥상이 ‘요리 4개, 탕 1개(四菜一湯)’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지시도 나왔다. 벤츠 등 호화 차량은 군대 번호판을 달 수 없게 했다. 중고차 시장에 고급 외제차가 대거 매물로 나왔다는 풍문이 돈다. 특급 식당들은 “매출이 반토막 났다”며 울상이다.

하지만 중국에는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는 말이 있다. 고급술인 마오타이(茅台)를 싸구려 술병에 담아 마신다든가 요리를 잔뜩 시켜놓고 식탁에는 항상 ‘요리 4개, 탕 1개’만 번갈아 올리도록 하는 편법도 나온다.

부패의 뿌리가 워낙 깊어 최고 지도부의 노력과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은 이미 명 태조 주원장 등 중국의 앞선 역사가 증명해 왔다. 이 때문에 시 총서기 취임 이후 대대적인 사정 드라이브와 함께 부패를 시스템적으로 예방하고 척결하는 조치가 도입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6개월이 된 현재 그 첫걸음인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조차 중국 언론에서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다. 최근 베이징에서는 이 제도 도입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4명이 공안에 체포됐다고 한다.

시 총서기는 “파리부터 호랑이까지 때려잡겠다”고 말했으나 아직까지 ‘호랑이’를 잡았다는 평가는 없다. ‘호랑이들’인 거대 국유기업에 대한 개혁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3공(公) 경비(관용차 구매 및 관리비, 공무 접대비, 해외 출장비)를 공개한다는 계획 정도가 의미 있는 작은 변화지만 실행 여부는 두고 볼 문제다. 새 지도부의 부패 척결에 대한 중국인들의 높은 기대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