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자 (1943∼)
내가 나라는 때가 있었죠
이렇게 무거운 발도
오그린 발톱이 없었죠
그때는
이파리 다 따 버리고
맨발로 걸었죠
죽은 돌을 보고 짖어 대는
헐벗은 개 한 마리가 아니었죠
누구 대신 불쑥 죽어 보면서
정말 살아 있었죠
그때는
세우는 곳에 서지 않고
맨발로
내가 나를 세웠죠
그때는
내 이야기가 자라서
정말 내가 되었죠
불온했던 꽃 한철
그때는
맨발에도 별이 떴죠
그 별을 무쇠처럼 사랑했죠
날이 갈수록
내가 나를 들 수 없는
무거운 발
가슴에서 떨어져 나간 별똥별이죠
발도 고향에 가고 싶죠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아 발 가볍던 젊은 날과 많은 일에 옭아 매인 현재를 대비해서 들려주고 있다. 내용은 화자가 몸도 마음도 지쳤다는 걸 짐작하게끔 무거운데, ‘∼죠’라고 되풀이되는 어미가 어린이처럼 무구한 느낌을 주고 리듬감이 있어 경쾌하게 읽힌다.
젊었던 ‘그때는’ 장식도 허위도 없고, 겁쟁이도 아니었단다. 그래서 가슴 닿는 데로만 갔었단다. 지금은 내키지 않아도 ‘세우는 곳에’ 서 있단다. 그런데 그게 강제로 세워졌던 걸까? 그걸 선택한 건 본인이 아니었나? 이익이나 의무감이나 체면, 혹은 허영 때문에 말이다. 화자도 그걸 알고 있다. ‘누구 대신 불쑥 죽어 보면서/정말 살아 있었’던 적이 있으니까. 화자가 들려주는 참으로 순수하고 거침없고 찬란했던 그의 젊은 날. 아, 옛날이여! 나이 든 남자들은 “내가 왕년에” 하며 잘나갔던 시절 얘기를 꺼내곤 하지.
맨발에는 별이 뜨고, 맨발로만 가슴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제 그 발 ‘가슴에서 떨어져 나간 별똥별’이 되었네. 아, 별똥별은 자기가 본래 있었던 머나먼 그곳으로 얼마나 돌아가고 싶을까! 다른 많은 나이 든 사람들처럼 삶은 틀에 박혀 있지만 언어감각은 발달한 시인이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본래의 나’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