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 제도를 도입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기대했던 석유제품의 가격 인하 효과는 미미한 상태다.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해 관세 혜택까지 주며 들여온 수입 휘발유는 오히려 국내 정유회사 제품보다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 경유시장은 ‘엔저(円低)’를 등에 업은 일본산이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올 2월 국내에서 유통된 수입 휘발유의 평균 판매가격(수입사가 주유소에 판매하는 가격)은 L당 1891.20원으로 국내 정유 4사의 평균판매 가격(1878.01원)보다 13.19원 비쌌다. 수입 휘발유가 국내산보다 더 비싼 ‘가격 역전 현상’은 지난해 11월과 12월에도 있었다.
2005년 4월 이후 완전히 끊긴 휘발유 수입은 지난해 10월에야 재개됐다. 정부가 지난해 7월부터 전자상거래를 통해 거래되는 수입 석유제품에 관세(3%), 석유수입부과금(L당 16원), 바이오디젤 2% 혼합 의무(경유만 해당) 규제를 모두 없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실질적으로 수입 석유제품에 L당 50원 이상의 혜택이 돌아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이런 혜택을 주면 수입사들이 국내 주유소에 석유제품을 보다 싼값에 공급할 것으로 기대했다. 아직 시행 초기지만 정부 기대와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국내 수입회사들은 휘발유를 주로 대만 일본 싱가포르 등에서 들여오고 있다. 대만에서는 매월 6000∼5만 배럴을 꾸준히 수입하고 있고, 일본과 싱가포르에서는 올 1월 각각 28만9000배럴과 15만4000배럴이 들어왔다. 이들 3개국에서 5개월간 수입한 물량은 총 54만2000배럴로, 금액으로는 6624만4000달러(약 749억 원)에 이른다.
전자상거래 도입 이후 가격 인하 효과는 없었지만 수입량은 급증했다.
경유 수입의 경우 민간 수입업자들에 의해 크게 늘어나고 있다. 2010, 2011년 경유 수입량은 각각 75만9000배럴, 95만1000배럴이었다. 지난해는 477만2000배럴이 국내에 들어왔고, 올 들어서는 1, 2월 두 달간 182만8000배럴이 수입됐다. 현재 국내 전체 경유시장에서 수입 물량의 비중은 10%가 넘는다.
특히 일본산 경유가 석유 전자상거래 제도 도입 이후 국내 경유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황 성분 함유량 10ppm 이하’ 등 국내 석유제품의 품질기준을 충족하는 곳이 일본 정유회사 외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3만6000배럴이던 일본산 경유 수입량은 올 2월 62만6000배럴로 늘어났다. 1년 사이 17배로 급증한 것이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수입사는 40∼50개에 이르지만 실질적으로는 페트로코리아, 이지석유, 세동에너탱크, 남해화학 등 4개사가 90% 이상을 독점하고 있다. 이들에게 정부의 세제 혜택은 ‘달콤한 꿀’이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 사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공개된 지난해 이들의 실적을 보면 이런 사실이 잘 드러난다.
페트로코리아와 이지석유의 지난해 매출액은 각각 7746억 원, 6466억 원으로 전년(4529억 원, 4346억 원)보다 무려 71.0%, 48.8%나 늘어났다. 2011년 매출액이 194억 원에 불과하던 세동에너탱크는 지난해에 22배로 늘어난 4394억 원의 매출액을 신고했다. 이들 3개사는 전반적인 석유시장 불황에도 38억∼111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남해화학만 유일하게 전년보다 실적이 후퇴했지만 이 회사 매출액의 60% 정도를 담당하는 비료 및 화학사업에서의 부진 때문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처음으로 정유 4사의 경유 수출 비중(52.3%)이 내수 판매를 넘어섰다”며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통해 국내 경유는 해외로 싸게 팔려나가는데 일본산 경유는 세제 혜택까지 받으며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 석유 전자상거래 ::
정유업체, 수출입업자, 석유제품 대리점, 주유소 등이 전자시스템을 통해 석유제품을 거래하는 제도를 말한다. 정부는 작년 3월 말에 도입된 전자상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수입 석유제품에 각종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