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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참 한가하고 지루한 ‘창조경제 개념’ 논쟁

입력 | 2013-04-09 03:00:00


청와대가 정부 각 부처에 창조경제 실현 방안을 제출하라고 했더니 기존 사업에 ‘창조’라는 글자만 붙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정부조직법 협상 과정에서 야당을 향해 “창조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하던 새누리당이 뒤늦게 ‘창조경제의 개념을 모르겠다’고 성토한 것도 코미디 같다. 새 정부 국정철학의 키워드라는 창조경제의 개념이 모호한 판에 ‘국정철학을 공유하지 못한 인사’는 공기업에서 물갈이하겠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들고 나온 배경은 쉬 짐작할 수 있다.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한국 경제가 마주한 저성장 함정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니 창의적인 방식으로 미래 성장동력을 찾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구상일 터이다. 문제는 어떻게 정책으로 구현하느냐이다. 철학과 방향은 있는데 실천을 위한 각론이 없는 상황이다.

영국 정부는 음악 미술 등 순수 예술은 물론이고 광고 건축 공예 디자인 영화 비디오 소프트웨어 게임 애니메이션 방송 등도 창조산업으로 분류해 육성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말하는 창조경제도 정보통신기술(ICT)뿐 아니라 영국식 창조산업의 개념을 포괄하고 있다.

사실 현 정부만 창의와 신(新)성장동력을 중시하는 건 아니다. 전임 이명박 정부도 비슷한 취지로 지식경제부를 만들었다. 매사에 ‘혁신’을 앞세우던 노무현 정부는 과학기술부 장관에게 부총리 자리를 만들어 줬다. 김대중 정부의 5T(Technology·정보 바이오 나노 환경 문화) 정책도 같은 방향이었다. 경제활동을 계속하는 한 창의와 신성장동력은 어느 정부에나 꼭 필요한 가치다. ‘내 임기 중에 성과를 보겠다’는 조급증을 버리고 긴 안목으로 추진해야 할 장기 과제인 것이다.

창조경제의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도 문제다. 최근 국토교통부 업무 보고에서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층간 소음의 해결 방법을 찾는 것도 창조경제”라면 이 세상에 창조경제 아닌 게 어디 있겠는가. 창의성을 강조하려는 취지였겠지만 이런 식이면 애초부터 선택과 집중이 불가능하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40일이 넘었다. 액션 플랜에 따라 정책 집행에 힘쓸 시기에 개념 논쟁이나 벌이고 있는 것은 한가하다. 공허한 논쟁을 멈추고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의 규제 혁파 등으로 새로운 성장엔진에 불을 댕기는 것이 더 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