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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천병태]국운을 결정할 에너지 전쟁

입력 | 2013-04-09 03:00:00


천병태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

1941년 에너지 부족으로 소나무 송진까지 채취해 사용해야 했던 일본은 석유 수송로의 안전을 방해하는 미 해군에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이는 결국 일본제국주의 몰락과 우리나라의 독립이란 결과를 가져왔다.

신생 독립국 한국이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안고도 짧은 기간에 압축성장을 통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이름을 올리고,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구가할 수 있는 것은 인적 자원 외에는 가진 것이 없는 신생 독립국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의 혜안 덕분임이 분명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50년대 세계 최고 빈곤국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원자력발전은 ‘자원이 아니라 머리로 캐는 에너지’라는 인식하에 과감한 결단을 통해 원자력발전의 주춧돌을 놓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개발계획 추진에 따른 에너지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을 적극 추진하였고, 서거 1년 전 고리 1호기의 완공을 보았다. 그 후 정권에 관계없이 원전건설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 김영삼 정부 때 3기, 김대중 정부 때 6기, 노무현 정부 때 2기의 원전 완공을 보았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원자력발전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2009년에 연구용원자로를 요르단에 수출하고 아랍에미리트(UAE)에 한국형 원전 4기를 수출해 그 결실을 이뤘다.

그러나 최근 한국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원자력발전은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사고는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인식을 급격히 악화시키며 원자력이 과연 안전한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급기야 정부도 2년마다 수립하는 전력수급계획에서 원자력에 어느 정도 비중을 두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의 불완전성을 근거로 재생에너지 확대와 원전 수요관리를 통해 탈원전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강력히 나오고 있으나 현실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 탈원전을 추진했던 나라들은 지금 상황이 많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탈원전’의 대표국가 독일도 신재생에너지에 지급되는 막대한 보조금 때문에 전기요금이 급격히 상승했고 이로 인해 산업체의 경쟁력이 낮아지는 등 고민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결국 지난달 12일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연합(EU) 12개 회원국은 ‘저탄소 에너지원인 원전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겠다’는 각료급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에너지원으로 원전을 인정한 것이다.

올해 원자력계는 풀어야 할 난제가 수두룩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대로 우리나라 23기 원전은 높은 수준의 국제기준 안전성 점검(STRESS TEST)을 통과해야 한다. 또 원자력발전을 발전원에 어느 정도 비율로 포함시켜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원전 부지마다 점차 쌓이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도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우리나라 원전연료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문제를 다룰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도 놓여 있다.

왕도(Royal Road)는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한다. 소나무 송진에 미래의 운명을 맡기지 않으려면 역사와 과학의 발전에 대한 믿음과 끊임없는 노력만이 21세기 에너지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왕도이다.

천병태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