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희진 산업부 기자
지난 주말에는 경북 안동시의 ‘치암고택(恥巖古宅)’에서 하루를 묵었다. 고택은 역사가 최소 70년 이상이거나 문화재로 지정된 가옥을 뜻한다. 2012년 정부가 고택 명품화 사업을 시작하며 전국의 56곳을 ‘명품고택’으로 지정했다. 그중 13곳이 이중문 설치와 도배, 전기 공사를 마치고 숙박업소로 운영되고 있다.
퇴계 이황의 11대손인 치암 이만현 선생의 옛집은 180여 년 역사가 곳곳에 묻어났다. 베네치아 가정집을 떠올리며 약간의 불편을 예상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방 9개 가운데 5개는 비데까지 갖춘 욕실이 딸려있다. 최신 텔레비전과 냉난방 시설은 호텔이 부럽지 않았다. 주인 이동수 씨는 “최신식 화장실이 없으면 외국인은커녕 한국인도 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홍보 수단은 한국어로 된 홈페이지 하나뿐인데 치암고택에는 주말마다 빈방이 없다. 이날도 9개 방이 다 찼다. 그런데 이 씨 부부는 운영난이 심각하다고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인력난. 이 씨는 고택에 온 손님에게 다양한 전통문화를 알려주고 싶지만 하루 종일 예약 전화를 받고 방을 치우느라 시간이 없다. 정부 지원은 명품고택을 만들기 위한 좋은 고가구 배치 및 시설 개선에 집중돼 있다. 오래된 집이라 지속적인 개보수가 필요하지만 월 200만 원 넘는 전기요금이 발목을 잡는다.
몇 해 전부터 전통가옥이 주목받으며 한옥 스타일의 숙박업소가 생겨나고 있다. 제주 농가주택은 게스트하우스를 만든다는 사람들로 품귀 현상을 빚었다. 전통을 살린 새 집이 국적 불명의 펜션이나 모텔을 밀어내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한편으로 우리가 진짜 살았던 고택도 묵은 먼지를 털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새 집이 흉내 낼 수 없는 역사가 담긴 고택에는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염희진 산업부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