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저장공간 10년내 포화… 원전 가동 멈출수도
[한반도 핵 줄다리기] 한국, 핵 재처리 권한 왜 필요한가
현재 한국은 사용후핵연료를 4곳의 원자력발전소에 임시로 보관하고 있는데 2016년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재처리 권한이 있다면 프랑스 영국 일본처럼 사용후핵연료에서 우라늄을 다시 뽑아내거나 각종 방사성동위원소를 직접 생산해 과학이나 의학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골칫덩이인 핵폐기물을 값진 자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는 총 23기이며 5기가 추가 건설 중이다. 지금까지 가동한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고준위폐기물)는 1만2000t에 이르며 매년 700t씩 추가로 쌓이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2100년이면 약 11만 t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원자력발전 후 나오는 고준위폐기물을 보관할 전용 시설이 없다는 점이다. 경북 경주시에 건설된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은 사용후핵연료가 아닌,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한 장갑 같은 저준위폐기물을 보관하는 시설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폐연료봉 상태 그대로 사용후핵연료 36만2000여 다발을 고리 영광 울진 월성 등 4곳의 발전소 내부에 임시로 보관하고 있다. 이 중 고리원전은 2016년이면 저장능력이 포화 상태에 이른다. 이때가 되면 고리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를 다른 지역 원전으로 옮겨 보관해야 한다. 하지만 월성(2018년) 영광(2019년) 울진(2021년) 등 다른 3곳의 원전도 수년 내 포화 상태에 이른다. 앞으로 8년 후면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곳이 없게 되는 셈이다.
사용후핵연료에는 기술만 있으면 얼마든지 에너지로 쓸 수 있는 우라늄이 96%까지 포함돼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고 재활용하면 같은 양의 핵연료로 지금보다 몇십 배 더 많은 전기를 얻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폐기물의 양이 크게 줄어든다.
○ 재처리 이외 대안들의 한계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 이뤄지면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던 의료용 동위원소의 국내 생산도 원활해진다. 한국은 한국원자력연구원 실험용 원자로인 ‘하나로’에서 일부 동위원소를 생산하고 있지만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동위원소를 주로 수입하는 캐나다 등에서 원자로 가동이 중단되면 국내에서 암 진단 및 치료에 사용되는 방사성동위원소 수급이 어려워져 파장이 커질 수 있다.
최선주 원자력연구원 동위원소연구부장은 “암 진단 및 치료나 영상의료 진단 등에 쓰이는 요오드(i)-131이나 몰리브덴(Mo)-99 같은 동위원소는 핵물질 분리 작업 방법을 이용하면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은 2900억 원을 투입해 부산 기장군에 짓고 있는 새 연구용 원자로와 방사성동위원소 생산시설의 활용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간저장시설’을 임시로 건설해 20∼30년 동안 방사성폐기물을 보관하자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중간저장시설도 용지와 기술을 확보해야 해 방폐장만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후보 지역 주민들의 반감 등을 고려하면 용지 선정에만 10여 년이 걸릴 수 있다. 건설기술도 아직 완전하지 않다. 중수로인 월성 1∼4호기의 경우 중간저장시설과 유사한 보관시설을 발전소 내에 만든 사례가 있지만 나머지 19기의 경수로 원자로는 추가로 저장시설을 만들지 않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방사성폐기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을 미국과 공동으로 연구 중이지만 완성되려면 십몇 년 더 시간이 걸린다. 상용화 단계까지 도달하려면 2025년이 넘어야 가능하다.
전승민·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