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로자들 당혹 속 귀환
“내려오시기 전에 개성공단을 잠정 중단하고 북측 근로자 철수시킨다는 얘기 못 들으셨어요?”(기자)
“내려오기 전엔 못 들었죠. 북측 근로자들은 당 상부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내색을 전혀 안 해요.”(익명을 요구한 개성공단 업체 관계자 A 씨)
“언질이나 귀띔도 없었고요? 개성공단을 관할하는 조선특구개발지도총국은요?”(기자)
8일 오후 5시 50분경 동아일보 기자와 대화하던 A 씨는 취재진이 몰려오자 “나 이제 가볼게요”라며 서둘러 차를 타고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를 떠났다. A 씨는 이날 오후 5시 반경 개성공단을 오가는 길목인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남측으로 돌아왔다.
애초 이날 5시경 돌아오기로 한 남측 업체 관계자 29명은 30분이나 늦게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개성공단을 잠정 중단하고 북측 근로자를 철수시킨다는 김양건의 담화 사실이 오후 5시경 북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알려진 뒤였다.
서울로 돌아온다는 뜻의 남북출입사무소 입경(入京)장을 나서는 업체 관계자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이들은 ‘철수 사실을 알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노코멘트” “내려온 다음에 알았다”는 짧은 말만 반복했다. 업체 관계자들과 함께 내려온 현대아산과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관계자들도 심각한 표정으로 남북출입사무소 안에 마련된 각자의 사무실로 직행해 긴장된 표정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개성공단에서 9일 나오겠다고 신고한 남측 업체 관계자가 77명이라고 전했다. 8일 현재 남아 있는 479명의 남측 업체 관계자 수에 비하면 적은 수다. 남측으로 귀환하겠다고 통일부에 통보된 시점인 이날 오후 4시경까지 업체 관계자들이 북한의 개성공단 잠정 중단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통일부 관계자가 말했다.
그러나 김양건은 이날 오전 개성공단을 잠정 중단하라는 평양의 지시를 총국에 전했다. 이후 북측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이날 오전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개성공단기업협회 옥성석 부회장은 “개성공단 전체가 패닉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면서도 “아직 협회에 구체적인 철수 계획을 밝혀온 회사는 없다”고 했지만 결국 업체들은 철수 직전의 운명 앞에 섰다.
남북출입사무소가 업무를 끝낸 오후 6시경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파주=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