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객과 만나지 못한 장면들
① ‘7번방의 선물’에서 용구(류승룡)는 이화여대 무용학과 97학번의 단체 점퍼를 입고 나온다. 관객은 용구가 왜 이 점퍼를 입었을까 궁금하다. 고물상 아주머니가 아빠에게 주라며 예승(갈소원)에게 이 점퍼를 선물하는 장면이 편집 과정에서 잘렸다는 사실을 알면 이해가 간다. ② ‘신세계’의 소금창고에서 내부의 적을 죽이고 셔츠에 피를 잔뜩 묻힌 정청(황정민·왼쪽)이 자성(이정재)과 마주한 장면. 이 장면 이후 둘이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잘렸다. 뉴 제공
러닝타임 2시간 14분인 ‘신세계’의 1차 편집본은 3시간 반이었다. 제작사와 박훈정 감독은 이 편집본이 지루한 부분 없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업영화의 상영시간에 맞추느라 최종 편집을 거치며 ‘엑기스’만 살아남았다.
박 감독에게 자른 부분 중 가장 아까운 장면을 꼽아 달라고 했다. 폭력 조직의 2인자인 정청(황정민)이 소금창고에서 조직에 침투한 경찰을 ‘숙청’하고 난 뒤의 장면이었다. 관객은 정청이 피 묻은 손을 빗물에 씻는 장면까지만 봤다.(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화를 안 본 독자는 읽지 마시길.)
‘건축학개론’에서 승민(엄태웅)의 약혼녀 은채(고준희)는 서연(한가인)이 승민의 첫사랑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1차 편집본에서는 알고 있었다. 빠진 장면의 대사는 이렇다.
“어떤 사이야?”(은채) “옛날에 내가 서연이를 많이 좋아했었어.”(승민) “그게 다야?”(은채) “응, 그게 다야.”(승민) “응, 그럼 됐어.”(은채)
이 장면은 영화 마지막에서 은채와 승민이 행복한 모습으로 비행기를 타는 장면과 맞물려 필요한 장면이었지만 아쉽게도 빠졌다. 이 장면을 비롯해 고준희가 출연한 컷이 많이 잘렸다. 제작사 명필름은 미안한 마음에 그를 조연이 아니라 특별출연으로 엔드 크레디트에 소개했다.
‘7번방의 선물’에서는 간통죄로 교도소에 들어온 만범(김정태)이 예승이(갈소원)를 음흉하게 바라보다가 방 식구들에게 몰매를 맞는 장면이 있었다. 하지만 부정(父情)을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에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편집회의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장면도 있다. 임권택 감독의 아들인 권현상은 하마터면 ‘타워’에 출연하고도 스크린에 얼굴을 못 내밀 뻔했다. 그는 극 중 환경미화원 아주머니의 아들로 나오는데, 이 모자의 출연 장면을 통째로 빼자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제작진은 여러 번의 사전 시사회를 거쳐 모자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라는 관객 반응을 확인하고 이들을 ‘살려줬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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