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8일 월요일. 봄 맞지. 번역의 이론과 실제(2) #53 Alcest ‘Printemps Emeraude’(2007년)
교수님은 프랑스 TV 뉴스의 정통 발음을 감상해보자며 영상물을 재생했다. 남자 앵커의 목소리를 들은 뒤 난 깨달았다. 이건, 아니란 걸. 불어의 억양은 하나뿐이다. 평탄하게 가다 문장 끝만 올려주는 것. 여자 분 것까진 괜찮았다. 남자 앵커의 억양은 뭐랄까…. 화이트 초콜릿 모카 위에 휘핑크림을 고봉(高捧)으로 얹은 뒤 친한 친구와 입을 맞대고 흡입하는 느낌쯤?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속 솜사탕 키스처럼.
불어책보다 팝 가사와 음악잡지를 60배쯤 많이 읽었던 5년의 학부 생활 동안 유일하게 내 맘을 흔든 텍스트는 라신의 17세기 고전비극 ‘페드르’였다. 궁정에서 벌어지는 막장 드라마와 그 등장인물이 대사로 주고받는 폭풍 같은 각운(脚韻) 릴레이는 마치 1만 분짜리 랩을 읽는 듯했다. 구절구절 소름 끼쳤다. 요즘 랩은 랩도 아니다.
5분 24초부터 종결부를 장식하는 블래스트 비트(헤비메탈에 많이 쓰이는, 분당 박자 수 180 이상으로 빠르게 드럼을 연타하는 주법)는 그 나라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여자 아이와 그를 좇는 남자 아이의 동선을 핸드헬드로 촬영하며 따라가는 청각적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숲의 끝은 꿈의 끝이다. 그래, 노트. 이 계절, 나의 ‘벚꽃 엔딩’은 이거였어.
‘봄의 숲은/천국의 둥근 지붕,/에메랄드가 별처럼 총총히 박힌./나뭇잎들은 가벼운 바람에 춤추고/햇살은 그들을 보석으로 바꾼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