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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전교조, 종북 시비 스스로 단절할 때

입력 | 2013-04-10 03:00:00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다시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다. 1989년 창설, 1999년 합법화 이후 바람 잘 날 없었던 전교조가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르게 된 것은 지난해 12월 16일 대선후보 TV토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전교조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박 대통령이 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전교조 출신 인사가 요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전교조와 긴밀한 유대 관계를 이어가는 것 아니냐”고 공격하자 문 후보는 “교육을 이념으로 편 가르기 하는 것이냐”고 맞받았다.

이어 박 대통령은 “전교조가 이념교육으로 학교를 혼란에 빠뜨렸다”면서 “전교조 잘못된 것 이야기하지 않고 유대 강화하면 (전교조에) 동조하는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문 후보가 “전교조의 촌지 근절, 교직 비리 근절(노력)을 다 부정하느냐”고 묻자 박 대통령은 “전교조도 처음 정신으로 가야지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저는 그런 부분은 찬성한다”며 전교조가 초심(初心)에서 벗어났다는 의견에는 동의하고 다른 토론 주제로 넘어갔다.

박 대통령의 취임을 앞둔 2월 15일 때마침 전교조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 연합(교학련)’이라는 단체가 2011년 전교조 교사 6만여 명에게 ‘일부 종북 세력들이 전교조를 이끌어가는 것은 문제’라며 ‘전교조 탈퇴를 소망합니다’라는 편지를 보낸 것에 대해 법원이 전교조 손을 들어준 것이다. 법원은 “근거 없이 전교조를 종북 세력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며 교학련이 2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닷새 뒤 전교조는 오래 억눌렸던 감정을 폭발시키듯 ‘전교조가 종북 세력이라고?’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냈다. 전교조는 “우리는 해고를 불사하며 학교 정상화에 헌신해온 조직”이라고 강조했다. 기득권 세력이 진보적 가치의 확산을 거부하면서 전교조의 ‘인간화 교육’과 ‘참교육’을 ‘이념교육’과 ‘종북교육’으로 비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교조의 초심에 대해서도 “전교조는 초심을 잃은 적이 없다”며 “‘전교조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전교조를 한 번도 인정해 준 적이 없는 기득권 세력이 하는 말”이라고 밝혔다. 전교조는 “이제 와서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어처구니없으며 욕을 위한 욕일 뿐”이라는 표현도 썼다.

여기에는 종북 세력으로 공격받았던 세월에 대한 억울함 같은 격정이 녹아 있었다. 전교조가 초심을 잃은 적이 없다는 자기변호는 대선 TV토론에서 오갔던 말들을 의식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초심과 관련된 말은 같은 진보 진영인 문재인 후보도 했다. 전교조에 비판적인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래의 불안감도 내포되어 있었을지 모른다.

바로 다음 날 이런 발언을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검찰이 전교조 전 수석부위원장을 비롯해 4명의 전교조 교사를 이적단체 혐의로 기소한 것이다. 2008년 1월 ‘변혁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교육운동 전국준비위원회’를 구성한 뒤 교육현장에서 주체사상 등 북한 체제의 우수성을 학습시키고 전파했다는 혐의였다.

이들이 주도했던 행사에 참여했던 어린 학생은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군이 나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미군을 쏴 죽이자는 노래는 나의 마음과 같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 교사는 교실 복도에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자’는 북한 김정일의 강성대국 신념을 게시했다고 한다. 교사들은 혐의를 부인하지만 전교조의 종북 논란은 다시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에는 대법원이 2005년 빨치산 추모제에 중학생들을 데려간 전 전교조 교사에게 1,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은 잘못이라며 사건을 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빨치산은 대한민국을 폭력적 방법으로 전복시키려 했던 조직으로 학생들을 빨치산을 미화하는 자리에 인솔해 간 것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결론이었다. 최근에는 북한의 선전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에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 중에 전교조 교사가 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종북 시비가 벌어질 때마다 전교조는 자신들이 해온 것은 이념교육이 아닌 통일교육이라고 말해 왔다. 그러나 통일교육과 이념교육은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북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고 통일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는 것이 통일교육인 반면에 북한의 인권 실상이나 6·25전쟁의 남침 사실 등 역사적 사실들을 일부러 언급하지 않거나 왜곡하면서 북한 편을 드는 것은 이념교육이다. 정말 통일교육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교사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종북 행적이 드러난 뒤 국민이 등을 돌렸다. 이정희 통진당 대표는 대학가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전교조는 남의 탓을 하기보다 내부를 돌아봐야 한다. 전교조는 법적으로 교육 주체의 하나다. 한국 교육을 위해 전교조가 종북 시비와 의혹에서 벗어나는 일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전교조가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