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1910∼1937)
캄캄한 공기(空氣)를 마시면 폐(肺)에 해(害)롭다. 폐벽(肺壁)에 끌음이 앉는다. 밤새도록 나는 몸살을 앓는다. 밤은 참 많기도 하더라. 실어내가기도 하고 실어들여오기도 하고 하다가 잊어버리고 새벽이 된다. 폐(肺)에도 아침이 켜진다. 밤사이에 무엇이 없어졌나 살펴본다. 습관(習慣)이 도로 와 있다. 다만 치사(侈奢)한 책이 여러 장 찢겼다. 초췌(憔悴)한 결론(結論) 위에 아침햇살이 자세(仔細)히 적힌다. 영원(永遠)히 그 코 없는 밤은 오지 않을 듯이.
‘책(冊)’과 ‘장(張)’을 뺀 한자어들을 전부 한자로 쓴 시 ‘아침’의 원본에는 한자가 괄호에 들어 있지 않다. 한글 뒤에 한자를 병기하는 것보다 모양새가 자연스럽고 맵시 있다. 그러나 이상이 살았던 시대에는 사람들이 한자에 익숙했다. 그래서 소설과 성경을 제외한 그 시대 글에는 한글과 한자가 섞여 있다. 한글과 한자가 섞이면 의미가 즉각적으로 들여다보인다. 하지만 ‘한자맹(漢字盲)’에게 그것은 언감생심의 치사(侈奢)이리라. 한자라면 도무지 무섭기만 한 나로서는 한글전용인 이 시대를 사는 게 천만다행이다.
폐가 약한 사람의 ‘밤으로의 긴 여로’ 기행(紀行)이다. 오독일지 모르지만(오독은 해석의 지평을 확대시키는 창조적 읽기라고 우겨 본다!), ‘밤새도록 나는 몸살을 앓는다’에서 몸살은 진짜 몸살이기도 하고 정신적 몸살이기도 하다. 그가 ‘폐벽에 끌음이’ 앉도록 담배를 피우면서 몸살을 앓은 결과로 치사한, 즉 사치스러운 책이 여러 장 찢긴 것이다. 설마 각혈이라도 해서 책을 찢어 거기 뱉어냈다는 말은 아닐 테고, 정신의 사치를 다한 글을 쓰려 했으나 성에 차지 않아 찢었다는 말일 테다. ‘밤은 참 많기도 하더라’랄지 ‘초췌한 결론’이랄지 ‘아침햇살이 자세히 적힌다’랄지…. 서로 어울릴 법하지 않은 말들을 충돌시키며 이어 신선하고 효과적으로 읽히게 하는, 시적 허용을 최대한 누리는 시어들의 병렬이 과연 이상답다. 그런데 ‘코 없는 밤’이 무슨 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