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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취업교육 대신 교양 위주로… ‘따뜻한 시민’ 양성 정착

입력 | 2013-04-10 03:00:00

“기능인 아닌 지성인 길러내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출범 3년째




경희대는 2011년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개설해 지성인을 육성하는 대학 교양교육의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곽봉재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오른쪽)가 시민교육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경희대 제공

“교육은 사람을 목수로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20세기 초 미국 흑인 인권운동 지도자였던 윌리엄 듀보이스의 말이다. 드루 길핀 파우스트는 2006년 하버드대 최초의 여성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이 말을 다시 꺼냈다. 대학은 기능인을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소양을 갖춘 지성인을 길러내는 곳이라는 철학이다.

이 얘기는 지금 국내 대학에도 적용된다. 취업난이 깊어지면서 명문으로 손꼽히는 대학에서도 실용성과 특성화를 강조하는 학과가 연이어 개설된다. 반면 기초학문이나 교양교육에 대한 관심은 눈에 띄게 줄어드는 추세다.

○ 학생 그림 전시회까지 열어

지성인 양성을 고민하는 대학으로 단연 눈에 띄는 곳은 경희대다. 2011년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새로 열면서였다. ‘인간다움’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이름을 가져온 교양교육과정이다. 전공과 무관하게 전 생애에 걸쳐 인간다운 삶을 도와주는 기본교육을 시키자는 취지다.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목표는 탁월한 개인, 책임 있는 시민, 성숙한 공동체 성원 양성이다. 이를 위해 모든 학생이 35∼56학점을 반드시 이수해야 졸업하도록 만들었다. 또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학제 간 경계를 넘나드는 강좌를 마련했다.

올해로 3년째.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캠퍼스 밖으로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영화를 보면서 명화와 그 속에 담긴 문화를 배우는 ‘영화 속 그림읽기’ 강좌를 보자. 지난 학기에 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지난해 12월 13일부터 5일 동안 서울 마포구 유니아트홀에서 전시회를 열어 태극기 모양을 한 공동작품 ‘나의 미래’를 공개했다.

A4 용지 크기의 화판에 자화상을 그린 다음 119개의 작품을 모아 대형 태극기를 완성했다. 소통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상징한다. 솜씨는 서로 다르지만 각자의 사연을 담아서 더 뜻깊은 작업이었다. 당시 졸업을 앞둔 한 법학과 학생은 사법시험 때 사용한 진짜 시험지를 화판으로 활용했다. 팝아트 작가 로이 릭턴스타인의 작품 ‘전화코드’를 차용해 ‘OHHH…ALRIGHT’란 제목을 붙였다. 사법시험 대신 취업의 길을 선택한 자신에게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수업을 지도한 이현민 교수는 “다양한 소재와 기발한 아이디어로 불안한 현재나 미래의 희망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 내심 놀랐다. 대학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과 만나는 체험이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육과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 ‘더 성숙하고 더 나은 인간’ 지향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탁월한 시민, 책임 있는 시민, 따뜻한 시민을 목표로 별도의 시민교육 강좌(3학점)를 개설했다. 시민 및 공동체 의식을 길러주자는 취지.

지난해 시민교육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청소근로자에게 인사하기 캠페인’을 벌였다. 열악한 상태에서 일하는 근로자에게 인사를 하면서 학생의 인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이었다. 이들은 근로자와 함께 청소를 하고, 홍보 전단지를 나눠줬다.

또 교내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강의가 끝날 때마다 교수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가자’는 말을 하도록 부탁했다. 캠페인을 벌였던 박재홍 씨(20)는 “작은 경험이지만 수업을 통해 체험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사회가 보이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 과정은 크게 4개의 트랙으로 구성됐다. 중핵교과, 배분이수교과, 기초교과, 자유이수교과다. 신입생은 1학년 때 중핵교과를 의무적으로 듣는다. 인간과 세계 탐구를 주제로 1학년 1학기에 ‘인간의 가치탐색’을, 1학년 2학기에 ‘우리가 사는 세계’를 수강한다.

배분이수교과는 다양한 학문 분야를 경험하는 과정이다. 자연·우주·물질·기술, 평화·비폭력·윤리, 논리·분석·수량세계 등 7개의 주제영역 중 5개 주제를 고르면 된다. 기초교과는 글쓰기 영어 시민교육으로 구성됐다. ‘영화 속 그림읽기’ 같은 수업은 외국어 체육 예술영역을 포함하는 자유이수교과에 해당한다. 중핵 및 기초교과는 강의당 수강 인원을 20∼40명으로 제한한다. 토론과 발표 위주의 수업을 하기 위해서다.

도정일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은 “학생들이 더 성숙하고 더 유용하고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가르쳐서 사회로 진출시키는 게 대학 교육의 본질이고 대학의 존재 이유”라며 “네 가지 트랙을 잘 조화시켜 인간의 삶을 지탱하고 내면을 다지는 교양교육으로 다듬어 가겠다”라고 밝혔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