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림책도 한류다
하지만 유 씨는 이미 ‘입도선매’된 작가다. 2011년 세계적인 권위의 그림책 상인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 황금사과상(수상작 ‘어느 날’)을 받아 한 프랑스 출판사에 해외 출판에 대한 권리를 모두 넘긴 상태다. “한국보다 프랑스에서 먼저 책을 냈어요. 저처럼 국내 시장에 얽매이지 않고 해외 출판사와 직접 계약하는 한국 작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만국 공통어인 그림을 앞세운 한국 그림책이 해외 시장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동양적인 예술성에 우수한 교육 콘텐츠가 더해져 세계적 권위의 아동도서상을 연달아 수상하고, 이를 기반으로 수출 통로를 넓혀 가고 있다. 세계의 어린이들이 한국 그림책을 읽으며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2003년부터 볼로냐 아동도서전에 참가한 한국은 이듬해부터 거의 해마다 수상작을 내고 있다. 매년 70여 개국이 도서전에 참가하지만 상은 10여 개 작품에만 주어진다. 한국은 2004년 ‘팥죽할멈과 호랑이’, ‘지하철은 달려온다’가 나란히 우수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대상 2개, 우수상 8개를 받았다.
볼로냐 도서전과 함께 세계 2대 아동 도서전으로 꼽히는 BIB에서는 2005년 ‘새가 되고 싶어’가 황금사과상을 받았고, 이후 2007년 ‘영이의 비닐우산’이 어린이 심사위원상, 2011년 ‘달려, 토토’가 그랑프리, ‘어느 날’이 황금사과상을 차지했다.
잇따른 수상으로 한국 그림책의 우수성이 입증되자 해외 출판 계약도 늘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2005년 판권 수출은 단 1건이지만 지난해에는 45종의 판권을 수출했다. 수출 대상 국가도 중국 대만 일본 몽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프랑스 폴란드 브라질 등 9개국으로 늘었다.
선인세 총액은 약 13만9000달러(약 1억5800만 원)로 크지 않지만,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남미까지 수출 대상 국가가 다양해진 점은 고무적이다. 신혜영 웅진주니어 그림책팀장은 “중국은 교육 관련 그림책을 많이 수입해 간다. 반면 다문화에 관심이 많은 영미권과 유럽은 한국의 전통 관련 그림책을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문승현 대한출판문화협회 해외사업부장은 “해외에서 한국 그림책의 수준을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가 마련된 것이 중요하다.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했다.
한국 그림책 시장은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외국 베스트셀러 그림책들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그림책 수요는 증가하는 데 비해 해외에서 들여오는 우수 그림책의 수량이 제한되면서 국내 출판사들이 본격적으로 그림책 창작에 나서게 됐다. 김효영 비룡소 그림책팀 과장은 “세계적인 그림책 베스트셀러 판권을 이미 거의 다 수입했기 때문에 출판사들이 자체 콘텐츠 생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한국 그림책이 경쟁력을 확보한 비결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그림책은 언어적 장벽이 없어 외국 그림책들과의 경쟁이 가능하다. 색을 풍부하게 쓰는 영미권과 달리 한국은 붓과 먹을 이용한 수묵화 기법으로 단순미와 여백의 미를 살려 차별화했다. 또 교육열이 높은 국내 시장에서 살아남은 콘텐츠여서 세계 시장에서도 먹힐 수 있었다. 국내 경쟁이 치열할수록 세계무대에서의 경쟁력도 높아지는 것이다.
‘어린이책 시각’ 탈피 독립 장르화해야
과제도 있다. 영미권에서는 그림책을 세대 구분 없이 읽는 예술 장르로 보지만, 한국은 어린이 교육서라는 시각에 머물러 있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해외에는 그림책을 독립적인 예술 장르로 간주해 실험적이고 난해한 그림책들도 팔린다. 하지만 한국은 교육용이라는 시각에 한정돼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을 제한하는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황인찬·전주영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