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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자산몰수→인력추방 ‘금강산 수순’ 밟나

입력 | 2013-04-10 03:00:00

금강산관광 계약파기땐 사업권도 박탈
작년 개성공단서 中기업인 대상 설명회… 해외투자자에 공장시설 넘길 가능성도




9일부터 개성공단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북한이 식량 반입까지 차단한 상황에서 남측 인력이 전원 철수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많다. 이에 따라 ‘개성도 금강산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잔류 인력의 철수 이후 공단 폐쇄와 재산 몰수가 이어졌던 금강산 관광사업의 짙은 그림자가 개성공단에도 드리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날 생산직 근로자들의 출근을 막은 것과 달리 경비·관리 직원은 모두 담당 회사로 내보냈다. 정부 당국자는 “123개 입주기업 1곳당 1∼2명씩, 약 200명의 북한 직원이 생산시설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성공단은 무장한 북한 군인이 외곽경비를 서고 있고 일반 직원들이 출근을 하지 않아 경비가 필요 없는 상태다. 당국자는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주요 물품을 남측으로 반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경비인력을 배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008년 7월 한국인 관광객 피격 사망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다. 2년 뒤인 2010년 3월 북한은 “남조선 당국이 금강산·개성 관광을 계속 막으면 사업계약을 파기한다”고 선언했다. 같은 해 4월에는 △이산가족면회소 등 남측 정부 자산 몰수 △면세점 등 민간자산 동결 △관리인원 추방 조치를 취했다. 2011년 6월에는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을 신설해 현대아산이 갖고 있던 관광사업 독점권까지 박탈했다.

북한은 개성공단에도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한 상태여서 금강산 관광사업의 전례를 언제든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8일 김양건 대남담당 비서는 담화에서 “개성공업지구사업을 잠정 중단하며 그 존폐를 검토할 것”이라며 “이후 사태가 어떻게 번지게 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지난해 중국인 사업자들을 개성공단까지 데려와 사업설명회를 가진 바 있다. 여차하면 북한 스스로 개성공단을 차지해 운영하거나 한국이 조성한 공장용지와 시설을 외국인투자자에게 넘길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개성공단에 금강산과 같은 조치를 취하더라도 법리 다툼을 벌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 사이에는 2005년 상사중재위원회 구성·운영 합의서가 발효됐지만 아직 위원회를 구성조차 못하고 있다. 윤대규 경남대 교수는 “결국 남북관계에서는 법적 공방이 아니라 정치적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북한이 전례 없는 과감한 위협 행보를 보이고 있는 데는 나름 ‘믿을 만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2007년 30억 달러(약 3조4200억 원)이던 북한의 대외무역이 지난해엔 80억 달러(약 9조1200억 원)로 늘어난 상태”라며 “과거에 비해 개성공단의 경제적 비중이 줄어든 만큼 북한이 돈에 집착하기보다 명분싸움 양상을 전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현금창고’라는 한국 언론의 표현을 출입 차단의 빌미 중 하나로 꼽은 북한은 북측 근로자의 월급날(10일)을 앞두고 현금 수송차의 공단 진입도 막을 정도로 돈에 초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