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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규 前교수 “러 문학 번역 60년 총결산… 1인 작업이라 더 큰 보람”

입력 | 2013-04-10 03:00:00

톨스토이 전집 18권 도전




국내 번역가 1세대이자 러시아 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 권위자인 박형규 전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82·사진)는 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감회에 젖은 듯했다. 서울 경동중학교를 다니던 1940년대 후반 처음 접했던 톨스토이 작품을 통해 러시아 문학에 빠진 그가 60여 년 동안의 번역 작업을 결산하는 ‘대장정’의 첫발을 뗐기 때문이다.

박 전 교수가 내년 말까지 ‘톨스토이 전집’(뿌쉬낀하우스)을 펴낸다. ‘안나 카레니나’가 첫 번째로 나왔고, ‘전쟁과 평화’를 비롯한 톨스토이 장편과 중단편에 일기와 희곡을 더해 총 18권으로 완간할 예정이다. 그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펴냈던 작품들을 개정해 한데 모았고, 단편 ‘바실리 신부’는 새로 번역해 선보인다. 박 전 교수는 한국러시아문학회장을 지냈으며 톨스토이 작품 30여 편을 번역했다.

그는 이날 간담회에서 노환으로 청력이 떨어져 같은 질문을 두 번, 세 번 확인해 전달받으면서도 전집 출간 의미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톨스토이의 작품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 정착된 인류 공동의 문화입니다. 톨스토이 전집만 해도 일본에서는 수십 종이 나와 있고 아직도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러시아 문학 번역가로서) 뒤늦게 전집을 펴내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국내에서 톨스토이 전집은 인디북이 2003년부터, 작가정신이 2007년부터 펴내고 있다. 하지만 한 번역가의 손에 의해 톨스토이 전집이 간행되는 것은 처음이다. “톨스토이가 한평생 자기 문체로 창작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 번역가가 자기 문체로 번역하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경우 문학동네에서 펴낸 작품과 같은 원고지만 ‘전쟁과 평화’(범우사), ‘부활’(민음사) 같은 작품은 거의 개역에 가까운 수준의 수정을 했습니다.”

그의 꿈은 원래 외교관이었다. 중학교 때 서울 종로의 헌책방을 뒤져 찾아낸 책으로 러시아어를 공부한 것도 “조국의 분단을 막기 위해서는 러시아어 공부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한국외국어대 노어과를 졸업한 그는 1956년부터 8년간 ‘안나 카레니나’와 ‘전쟁과 평화’를 번역하며 본격적인 번역가의 길을 걷게 됐다.

“제가 톨스토이로부터 배운 사랑의 가르침을 스스로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서, 그리고 제 책을 읽는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따라오기를 바라면서 평생 번역을 해왔습니다. 톨스토이가 작품 속에 남긴 사상과 은유를 최대한 정확히 담은 작품을 선보이겠습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