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하나되자던 30년전 외침 생생”■ 英 대처 추모객-취재진 북적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죽음을 슬퍼하는 듯 런던에는 9일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 했다. 런던 국회의사당과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는 조기(弔旗)를 게양해 전임 총리에 대한 조의를 표했다.
중심가 부촌 벨그레이비아에 있는 대처 전 총리의 자택 정문 계단 밑에는 떠나간 ‘철의 여인’의 명복을 비는 조화가 수북이 쌓였다. 꽃다발 위에는 “당신은 누구보다 위대한 영국의 지도자였으며 여성 중의 여성이었다. 당신이 지금의 영국을 만들었다”고 쓴 카드가 놓였다.
여기서 만난 리처드 파인먼 씨(71)는 “포클랜드전쟁이 일어났을 때 내 나이가 40세였다. 대처는 국민에게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모두 하나가 되자’고 외쳤다”며 “두 달여의 전쟁 끝에 ‘영국이 승리했다’고 외치던 그의 모습이 생생하다. 영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그토록 자랑스러웠던 것은 그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호텔의 도어맨은 “어제는 너무나 슬픈 날이었다. 하지만 모든 게 어제 끝났다”며 “오늘은 보는 것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또 그는 대처 전 총리의 생활에 대해 말해달라는 기자의 부탁에 “미안하다. 대처 전 총리의 호텔 생활에 대해서는 일절 말할 수 없다”고 입을 닫았다.
전날 밤 12시가 넘어 대처 전 총리의 시신을 실은 것으로 보이는 차량이 이 호텔을 빠져 나갈 때까지 이 특급 호텔은 정문 앞과 후문 등이 취재진과 관광객, 시민들로 북적거렸다. 호텔 바로 옆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터커 씨는 “대처 전 총리가 10년 넘게 세상과 너무 오래 인연을 끊고 지내서 그런 건지 국민들은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라고 말했다.
특히 대처의 금융규제 완화정책으로 큰 혜택을 누렸던 도클랜드와 커네리워프 등 금융가에서는 슬픔을 강하게 드러내는 시민이 많았다. 법률회사 직원인 앨런 화이트퍼드 씨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좌파 정치그룹 쪽에서는 ‘파티를 열자’는 얘기까지 나온다니 부끄럽다. 슬픔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다”라고 말했다.
이날 영국 곳곳에서는 대처리즘을 규탄하는 시위도 벌어졌다. 런던경찰청은 9일 새벽 런던시내 이스턴과 브릭스턴 등에서 대처 전 총리를 규탄하는 폭력시위가 발생해 진압 경찰 6명이 다치고 경찰차 한 대가 부서졌다고 발표했다. 런던 남부 브릭스턴 거리 외벽에는 교육장관 시절 우유 무상 급식을 중단한 대처 전 총리를 겨냥해 ‘당신은 우유와 우리의 희망까지 날치기했다’는 내용의 거리그림도 게시됐다. 또 스코틀랜드 공업도시 글래스고와 런던 브릭스턴에서는 시민 수백 명이 “마녀는 죽었다”고 외치며 행진을 벌였다.
네덜란드를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마르크 뤼터 총리와 회담한 뒤 기자회견에서 “대처 전 총리는 현대사에서 가장 특출한 정치인 중 한 명이었으며 개인적 만남에서도 누구보다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회고했다.
네덜란드를 방문 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대처 전 총리는 1989년 유엔 총회에서 ‘국제사회가 기후변화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한 최초의 지도자였다”고 말했다.
고(故)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는 “대처는 냉전 기간 남편과 힘을 모아 소비에트연방(옛 소련)에 함께 맞섰던 정치적 연인이었다”며 “소련을 몰락시켜 민주주의와 자유의 진정한 승리를 이끈 인물을 잃었다”고 애도했다.
지난해 대처의 생애를 다룬 영화 ‘철의 여인’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메릴 스트립은 “대처는 세계 여성들에게 ‘공주님’이 되는 것과는 다른 꿈, 여자가 국가를 이끌 수 있다는 꿈을 선물했다. 하지만 냉철한 재정 정책을 고집해 부자들을 더 부유하게, 가난한 자를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런던=이종훈 특파원·손택균 기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