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눈을 떠요’ 진행
개성공단에서 간식으로 주는 초코파이는 북한 장마당의 주요 상품이 된 지 오래다. 개성공단에서 하루 풀리는 초코파이는 40만 개. 뜨뜻한 물에 초코파이를 풀어서 먹으면 어느 정도 허기를 달랠 수 있다. 유통기한이 6개월인 초코파이가 여러 경로를 거쳐 함경북도 장마당에서도 팔리고 있을 정도다.
북한은 북한 근로자의 임금을 통해 연간 약 9000만 달러를 거둬들이고 있다. 이 돈을 무역을 통해 벌자면 수십억 달러를 수출해야 할 판이다. 북한의 무역 규모나 국내총생산(GDP)에 비춰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돈이다. 북한은 “괴뢰역적들이 외화 수입의 원천이기 때문에 손을 대지 못한다느니 하며 우리 존엄까지 모독하고 나서고 있다”고 발끈했다. 한국 언론이 이 이야기를 어제오늘 쓰는 것도 아닌데 공연한 트집을 잡고 있다.
공단에 근무하는 북한 근로자가 받는 임금은 평균 150달러. 북한은 2009년 6월 남북 당국 간 회담에서 토지임대료를 5억 달러, 평균임금을 300달러, 현재 5%인 임금인상률 상한선을 10∼20%로 올려 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 북한의 개성공단 폐쇄 협박은 이러한 현금수입 증대를 노린 것이라고 보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 상황이 안정돼야 임금인상 협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만 일방적으로 득을 보는 것은 아니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면 입주 중소기업 123개사는 2조 원대에 이르는 매출 손실을 입는다. 개성공단의 한국 기업들은 생산에 필요한 원부자재를 모두 남쪽에서 가져다 쓴다. 입주기업과 연계된 협력사만도 3000여 개에 이른다. 중국에서 한국 기업이 현지인 한 명을 채용하자면 30만 원가량 들지만 개성공단에서는 15만 원이다. 북한 근로자들은 말이 통하고 교육 수준이 높아서 불량률도 적다.
개성공단은 북한 주민에게 시장경제의 학습장이다. 관광객들이 입산료를 내고 북한 주민과 일절 접촉이 없는 상태에서 경치만 둘러보고 돌아오는 금강산 관광과는 다르다. 개성공단 사무실에서 쓰는 복사지도 한국 것이다. 북의 교과서는 질이 떨어지는 신문용지다. 북한 당국도 이러한 사정을 뻔히 들여다보고 있으면서도 개성공단 가동을 허용했다.
현재 개성시와 개풍군 주민 중에 일할 능력을 갖춘 사람은 모두 개성공단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성공단이 인력을 늘리려면 더 먼 곳에서 인력을 데려올 수밖에 없어 한국이 기숙사를 지어줘야 한다. 지금도 공단 근로자 출퇴근 버스 278대를 모두 한국이 지원하고 있다. 현재의 전쟁 위협 분위기가 사라지고 나면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실험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개성공단이다.
개성공단의 명맥이 바람 앞의 등불 같다. 북이 개성공단 폐쇄라는 마지막 카드를 아직 남겨두고 있어 일말의 기대가 남아 있긴 하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북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자면 우리 쪽에서 개성공단을 조심스럽게 다룰 필요가 있다. 이것을 눈치 채고 북이 더 협박의 강도를 높여가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눈을 떠요’ 진행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