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세청 지하경제 양성화 대책 발표최고38% 과세… 가산금까지 물릴 방침대기업 편법 증여 감시 전담조직 설치
앞으로 10억 원이 넘는 해외 금융계좌를 신고하지 않고 있다가 적발되면 계좌 보유자가 이 자금이 어디서 났는지 출처를 밝혀야 한다. 소명하지 못하면 해당 금액은 전액 과세대상 소득으로 간주돼 세금이 부과된다.
국세청은 11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청사에서 김덕중 청장 주재로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를 열고 ‘2013년 국세행정 운영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공개된 방안에는 이처럼 “탈세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을 납세자에게 지우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장은 해외 금융계좌로 국한됐지만 향후 국내의 다른 세목(稅目)으로 이 방식이 확대된다면 소득원을 밝힐 수 없는 재산을 보유한 탈세자들에게 상당한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 “해외 자금 출처 스스로 입증해라”
그러나 앞으로는 ‘10억 원 초과 해외계좌’에 대해 자금 출처의 입증 책임이 납세자에게 돌아간다. 만약 납세자가 이 자금에 대해 세금을 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최고 38%인 종합소득세율과 가산금이 적용돼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낼 수도 있다.
‘납세자 입증책임제’는 국세청과 조세학자 사이에서 오랫동안 논의돼 온 방안이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지금처럼 세무당국이 입증 책임을 질 경우 자료를 제출한 성실 납세자보다 자료를 숨긴 탈세 혐의자를 오히려 우대하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지금은 납세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빙자료를 숨기거나 없애면 국세청이 이를 일일이 파헤쳐야 한다. 하지만 조사인력이 부족하고 탈세 방식도 고도화돼 세원 포착에 어려움이 따른다. 이현동 전 국세청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공정사회의 기반을 위해서 입증 책임의 전환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만약 이 제도가 소득세, 법인세 등 다른 세목으로 확대된다면 한국의 세무 집행에 일대 변화가 생긴다. 가령 세무조사 과정에서 10억 원의 차명계좌가 발견됐을 때 지금은 세무서가 돈의 출처를 모두 알아내서 정해진 세목에 맞게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하지만 입증 책임을 납세자가 갖게 되면 당국은 10억 원의 조성 과정을 몰라도 세금을 매길 수 있다.
○ “국세청 내부단속도 강화, 자영업 단체들도 나서
국세청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고강도 세무조사도 추진하기로 했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행위와 위장 계열사를 통한 편법 증여, 고소득 자영업자 탈세 및 역외탈세가 주요 조사 대상이다. 이를 위해 국세청은 자본거래 전담조직을 구성해 대주주의 지분 변동 상황을 상시 감시할 방침이다.
세수(稅收)를 늘리는 데 기여한 정도를 직원 평가에 반영하고 특별징수 실적이 있는 직원에게는 성과포상금도 지급할 예정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세무조사와 체납 징수를 통해 거두는 ‘노력세수’의 비중을 현재 전체의 7%에서 8% 이상으로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세청이 거둔 전체 세수가 192조 원임을 감안하면 올해 약 2조 원의 세금을 더 걷겠다는 뜻이다.
국세청 내부 비리를 줄이는 방안도 나왔다. 우선 국세청에서 감찰업무를 총괄하는 감사관 자리를 외부인사에게도 개방한다. 조사 직원은 자신이 담당하는 조사 대상 업체와 사적인 관계가 있을 경우 이를 사전에 알려야 하고 조사 후 2년간 해당 업체 관계자와 사무실 이외의 장소에서 따로 만날 수 없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