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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한 번 실수로 인생이 그렇게 꼬이다니… 토비 맥과이어의 ‘디테일스’

입력 | 2013-04-12 03:00:00


‘디테일스’는 깨지기 쉬운 일상의 안온함과 그 소중함을 역설하는 영화다. 예지림엔터테인먼트 제공

더 부러울 게 없는 인생이었다. 산부인과 의사 제프(토비 맥과이어)는 아내 닐리(엘리자베스 뱅크스), 아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존경받는 직업에 예쁜 아내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다만 아내와 6개월 넘게 잠자리를 안 한 것만 빼고. 의대 여자 동창 레베카(케리 워싱턴)에게 부부관계의 문제를 상담하러 갔다가 그만 그와 자고 만 제프. 아무도 모르게 둘만의 비밀로 끝나나 싶었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사달이 일어났다. 인생의 먹구름을 몰고 온 주인공은 작은 너구리. 너구리를 죽이기 위해 참치 캔에 약을 타 마당에 뒀는데 그만 옆집 고양이가 대신 죽었다. 옆집 독신녀 라일라(로라 리니)가 이 일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그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됐다. 라일라의 강요에 못 이겨 제프는 그와 침대로 향하고 만다. 며칠 뒤 만난 라일라의 말. “저, 임신했어요.”

제프의 인생은 이때부터 뒤죽박죽이 된다. 레베카의 남편은 불륜 사실을 알고 거액의 돈을 요구하고, 라일라는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고 한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존경받는 의사였던 제프의 인생도 끝이다. 영화 ‘디테일스’(11일 개봉)가 담고 있는 이야기다.

이 정도만 들어도 눈치 빠른 영화 팬은 금방 알 것이다. 이 영화가 샘 멘디스 감독의 ‘아메리칸 뷰티’와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아메리칸 뷰티’처럼 ‘디테일스’는 일상에 찾아온 작은 돌부리 때문에 인생이 크게 넘어질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우리가 안정적이고 완벽하다고 느꼈던 나의 사회적 지위와 가족, 부, 평판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를, 그래서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일깨운다.

다만 ‘디테일스’는 ‘아메리칸 뷰티’처럼 신랄한 풍자를 담고 있지는 않다. ‘아메리칸 뷰티’에서 보여줬던 미국 중산층 사회에 대한 비아냥거림과 허위의식의 고발까지 나가지는 않는다. ‘아메리칸 뷰티’의 주인공 케빈 스페이시가 맞이했던 비극적 결말을 떠올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인생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이런 주제를 표현하기에 토비 맥과이어만 한 배우가 또 있을까 싶다. 키가 큰 것도, 잘생기거나 섹시하지도 않은 이 배우. 무표정한 얼굴에 약간의 미소만을 띤 맥과이어의 얼굴은 과장의 기름기를 죽 짜버린 덤덤한 일상을 담는 데 딱이다. 그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슈퍼히어로를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모습의 새로운 버전으로 소화했던 배우가 아닌가.

제이컵 에런 에스티스 감독이 두 번째 연출한 장편이다. 에스티스 감독은 2004년 ‘민 크리크’로 미국 독립영화축제인 선댄스 영화제와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18세 이상.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