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은, 금리 6개월째 동결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금통위는 이날 6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당장 타격이 큰 쪽은 성장률 전망치를 ‘충격적’ 수준으로 낮추며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승부를 건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등 새 정부의 경제팀이다. 16일 국무회의에 추경 규모 등을 보고할 예정이던 기재부는 한은의 금리 동결을 예상치 못한 듯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금리를 동결한 한은도 새 정부 초기부터 정책 기조에 엇박자를 내는 데 대한 부담감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 금리 인하 압박한 새 정부 경제팀의 ‘헛스윙’
새 정부와 한은의 관계는 현 부총리가 취임 전인 지난달 13일 인사청문회에서 “금융과 재정, 부동산 등 종합적인 패키지 형태의 경기 대응 정책이 필요하다”며 금리 인하를 거론하면서부터 냉기류가 흘렀다. 이후 김중수 한은 총재가 청와대 경제금융점검회의(서별관회의)에 불참해 현 부총리는 취임 3주가 지나도록 김 총재와 공식 만남을 갖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기재부 장관, 한은 총재가 새로 임명되자마자 회동을 갖고 정책 조율에 나섰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근 뒤늦게 기재부가 열석발언권(금통위 참석 권한)을 포기하고, 현 부총리는 “한은 총재와 평소에 자주 보고 친하다. 협업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며 개인적 인연까지 거론했지만 싸늘해진 분위기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온건한 성장중시론자인 김 총재가 강경한 물가안정론자로 변신한 원인이 새 정부의 ‘무리수’에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총재는 금리 동결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올바른 정책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지, 쉬운 정책을 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물가안정을 통해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한은법 1조보다 우선하는 가치나 개념은 없다”고 강조했다.
김홍범 경상대 교수(경제학)는 “친(親)정부 성향을 보였던 김 총재가 새 정부에 대립각을 세우는 건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며 “정부의 공개적인 압박이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은은 이날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8%에서 2.6%로 소폭 낮춰 올해 2.3%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본 정부보다 낙관적인 전망을 유지했다. 한은은 “추경 효과를 일부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일반적으로 한은의 경제전망이 정부보다 낮았던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현상으로 평가된다. 김 총재는 “물이 반절 찼느냐, 반절 비었느냐는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는 말로 경제상황을 비관적으로 본 정부와 한은의 인식 차를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현 부총리가 이날 기재부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정부 내에서는 상황 인식이 일치해야 추진동력이 생긴다”고 언급한 것도 한은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와 한은의 갈등이 계속되면 임기가 내년 3월 말인 김 총재의 거취가 불안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1998년 한은 총재가 금통위원장을 맡게 된 이후 한은 총재는 중도에 교체된 적이 없지만 이명박 정부 초기 이성태 전 총재가 정부와 갈등을 빚자 ‘한은 총재 교체론’이 거세게 일어난 전례가 있다.
한편 정부의 압박공세에 기준금리 인하를 예상했던 금융시장은 이날 금리 동결로 패닉에 빠졌다. 5일 사상 최저치인 2.44%까지 하락했던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2.63%까지 오르는 등 시장금리가 급등했다.
문병기·황형준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