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보고서 “부친 고국양왕 무덤에 세워” 한-중 역사학자 내일 공개 학술회의
동아일보가 11일 동북아역사재단을 통해 입수한 ‘지안 고구려비’ 연구보고서(사진)에 따르면 이 고구려비는 광개토대왕이 아버지 고국양왕(?∼391)의 무덤인 천추총(千秋塚)에 세운 비석이다.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394∼491)이 세운 광개토대왕비와 충주고구려비보다 건립 연대가 이르다. 이 보고서는 지안 시 박물관이 작성해 국가문물국(문화재청)에 보고했으며 214쪽 분량이다.
이 비의 내용은 이미 공개된 것처럼 왕릉을 관리하는 사람인 수묘연호(守墓煙戶)가 관련 법령을 위반할 때 처벌하겠다는 것을 공시한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 김현숙 책임연구위원은 “이 비는 광개토대왕비와 함께 돌에다 법령을 새긴 일종의 성문법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며 “율령의 제정과 시행 양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당시 고구려 사회발전 수준을 엿볼 수 있다”고 밝혔다.
비의 건립 연대를 광개토대왕 때로 본 주요 근거는 광개토대왕비에 쓰인 ‘조선왕(祖先王)을 위해 묘에 석비를 세웠다’라는 구절 때문이다. 현재 조선왕을 두고 할아버지 왕 및 아버지 왕, 또는 역대 선왕 전체로 보는 설이 있다. 광개토대왕비 충주고구려비 염모총(염牟塚·한국 측은 모두루의 묘로 봄) 묘지(墓誌) 기와 등 당시의 금석문 자료와 이 고구려비의 서체를 비교한 것도 광개토대왕 때 이 비가 세워졌다는 결론을 보완하는 자료로 제시됐다.
이 보고서는 이 비가 천추총에서 서북쪽으로 456m에 위치한 왕릉 관리인인 수묘연호가 사는 곳에 세워졌다고 밝혔다. 현재 하천으로 변한 이 비의 발견 지점을 거주지로 본 것이다.
이 보고서는 한국 측과 논란이 불가피한 내용도 담고 있다. 우선 고구려의 기원과 건국에 관한 서술이다. 이 보고서는 고이(高夷)족, 염제(炎帝)족, 은상(殷商)족 등 중국 고대 민족을 고구려의 건국 주체로 보는 기존 중국학계의 설을 정리해 담았다.
▼ 보고서 “고구려 건국주체는 中고이족” 논란도 ▼
고구려가 건국 초기에 한(漢)나라의 지배를 받았다는 동북공정의 주장도 그대로 반영했다. 한국 학계는 압록강 중류유역의 토착세력과 부여에서 이주해온 세력이 한나라 세력을 쫓아내고 건국했다고 본다.
이번 연구는 ‘지안 고구려비 보호와 연구를 위한 영도 소조’가 진행했다. 겅톄화(耿鐵華) 퉁화(通化)사범학원 고구려연구원 교수가 조장을 맡았고 쑨런제(孫仁杰) 지안 박물관 연구원, 장푸유(張福有) 지린 성 사회과학원 부원장 등 과거 동북공정의 역사 왜곡 논란을 불러온 고구려사 전문가가 대거 참여했다.
비석의 건립 연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연구에 참여한 장 부원장은 최근 중국문물신식(정보)망에 ‘지안 고구려비 비문에 관한 보충 설명’이라는 글을 올려 이 비가 장수왕 때 건립됐다고 주장했다. 이 의견은 보고서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연구에 참가한 중국 측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건립 연대와 관련해 이견이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첨단장비 등 좀더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해 고증한 것이 아니어서 건립 연대를 두고 논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고구려비 연구를 두고 중국 측의 태도가 과거보다 훨씬 유연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1일 오후 동북아역사재단이 재단에서 연 비공개 학술회의와 13일 한국 고대사학회가 고려대에서 여는 학술회의에 겅 교수와 쑨 연구원이 참석하는 게 대표적인 변화다. 이들은 과거에는 한국 학계의 초청에 거의 응하지 않았다. 학계에서는 이들의 한국 학술회의 참석을 두고 고구려사 문제에서 양국의 학술 교류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한다. 또 고해상도 탁본과 연구보고서 등 관련 자료를 한국 측에 신속히 전달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김현숙 책임연구위원은 “고구려사와 관련해 한중 간에 학술적인 이견이 없을 수 없지만 이를 한중이 함께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새로운 고구려 비석의 발견을 계기로 한중 두 나라 학자들이 고구려 유적, 유물의 공동조사와 공동연구를 통해 고구려사 연구의 수준을 높여나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베이징=이헌진·고기정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