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직접 키워 그날 잡은 닭… 맑은 국물 뒷맛 개운
“내가 먹기에 꺼림칙한 닭을 손님에게 내놓을 순 없다.” 학마루의 유숙경(왼쪽) 김성칠 씨 부부는 이런 단순한 생각에서 건강하게 키운 닭을 깨끗하게 요리해 내놓는다. 착한식당으로 선정된 후 손님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몰려들지만 “실수는 있을 수 있어도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용인=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하지만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맛집은 따로 있다. 지난해 4월 20일 채널A ‘이영돈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착한식당 6호점으로 선정된 경기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학마루’가 그런 집이다.
학마루는 용인대로 올라가는 길가 오른쪽에 있다. 900평 규모 땅에 식당건물 50평(테이블 25개), 밭 400평, 주차장을 갖췄다. 식당 2층은 살림집이다. 식당 이름은 용인대 고개를 학고개라고 부르는 데서 지었다고 한다.
방송이 나간 후 주인 김성칠(61) 유숙경 씨(55) 부부는 말 그대로 몸져누웠다. 2003년부터 이 자리에서 영업해 왔는데 하루 15마리 정도 팔리던 닭이 방송 후엔 40∼50마리를 잡아도 역부족이었다. 부부는 몰려드는 손님을 받다 10일 만에 탈진해버렸다. 팔다리 관절이 붓고 뼈마디가 쑤셔 며칠씩 병원을 다녔다. 팔 닭도 바닥이 나자 그 핑계로 식당 문을 닫았다. “손질된 생닭을 다른 곳에서 공급 받는 게 아니라 직접 키워 잡아 팔다 보니 성계(成鷄)가 부족했어요.”(김 씨)
그런데 울산에서 올라온 손님이 부부를 일으켜 세웠다. 이 손님은 “방송을 보고 멀리서 일부러 왔는데, 문을 닫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호통을 쳤고, 부부는 “죄송하다”며 남은 닭 2마리를 잡았다. 김 씨는 “손님과 약속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몸이 힘들어 한 달간 쉬려다 보름 만에 문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서울과 경기, 제주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손님은 “미국에서 방송을 보고 꼭 한번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맛있다. 동업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요즘은 하루에 닭 40마리를 잡는다. 더 늘리려 해도 닭을 키우고 공급하는 데 한계가 있다. 여기에 오리를 15∼20마리 판다. 오리는 직접 키운 게 아니고 도매상에서 받는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평일이고 주말이고 할 것 없이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예약은 필수다. 기아자동차 영업사원을 하던 아들 상원 씨(31)와 딸 상희 씨(29)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상원 씨는 마트 장보기와 예약, 고객 응대를 맡고, 상희 씨는 서빙을 한다.
대박 난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취재하다 보니 몇 가지 답이 보였다.
우선 모든 닭은 직접 키워서 잡는다. 병아리부터 4개월까지는 김 씨의 친구가 충남 서산 야산에 풀어놓고 겨와 야채 등을 먹여 키운다. 이후 김 씨가 용인 가게 뒤편 야산으로 옮겨 1개월 남짓 풀어 키운 뒤 손님상에 올린다. 기자가 찾아간 날에도 야산에는 400마리 넘는 닭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먹이를 쪼고 있었다. 붉은색을 띤 이 닭들은 토종닭을 종자 개량한 재래종이다. 암탉의 경우 생후 약 5개월, 1.8∼2.2kg의 성계를 백숙용으로 쓴다. 수탉도 7∼8개월 되면 잡아 손님상에 내놓는데 흔치 않다. 김 씨는 “큰 장닭은 암탉보다 맛있지만 몇 마리 없어 재수가 좋아야 맛볼 수 있다”고 했다.
항생제나 전염병 예방약도 일절 쓰지 않는다. 이 때문에 닭의 20%가량이 죽어나간다. 하지만 내가 먹기에 꺼림칙한 닭을 손님에게 내놓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 정도 손실은 감수한다.
닭은 미리 잡아놓지 않는다. 그날 쓸 닭은 그날 잡는다. 닭을 잡고 손질하는 일은 김 씨 몫이다. 김 씨는 오전 6시면 일어나 오후 2시까지 닭털을 뽑고 내장 기름을 발라내 손질한다. 잡을 때는 목에 칼집을 내고 먼저 피를 빼낸다. “닭도 돼지처럼 피를 빼줘야 냄새가 안 나고 육질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주방을 지나 뒤쪽 닭 잡는 곳을 둘러봤다. 바닥에 피 한 방울, 닭 기름덩어리, 닭털 하나 없었고 칼과 도마, 닭털 뽑는 기계도 단정하고 깨끗했다. 쉽지 않은 일인데 정말 청결했다.
주방의 큰 들통에서는 각종 약재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끓고 있었다. 엄나무 황기 당귀 대추 둥굴레 감초 등 12가지 약재가 들어간다고 했다. 오전 9시부터 장사가 끝날 때까지 끓인다. 옻닭은 별도 예약을 받는데 이를 위해 부부는 집 뒤에 엄나무와 옻나무를 심어두었다. 올봄에도 묘목을 20만 원어치 사다 심었다고 했다.
압력밥솥에서 40∼50분 약재 달인 물과 함께 푹 고아낸 닭을 통째로 냄비에 담고 부추를 얹어 낸다. 여기에 배추 얼갈이 겉절이와 백김치, 홍어무침, 미역무침, 깍두기, 양파, 고추, 된장을 차려내면 상차림 완성이다. 닭을 먹고 나면 녹두 찹쌀죽이 나온다.
다른 착한 식당들처럼 학마루도 닭백숙에 인공조미료(MSG)를 쓰지 않는다. 기자는 국물을 한 숟가락 입에 떠 넣었다. ‘어라 뭐 이래? 평소 즐겨 먹던 백숙 국물이 아니네.’ 밍밍하고 심심했다. 희고 뽀얀, 때로는 기름이 동동 떠 있는 누런 육수가 아니다. 갈색 빛이 살짝 돌았지만 투명했다. 몇 숟가락 더 떠 넣자 그제야 뭔가 느껴졌다. 구수하고 시원했다. 뒷맛은 담백했다. 기름기가 입안에 남지 않아 느끼하지 않았다. 잡 냄새도 없었다.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맛이었다.
이어 기름기 하나 없어 제일 맛없는 부위인 닭 가슴살부터 먹어봤다. ‘어, 부드럽네. 이게 왜 이러지?’ 놓아먹인 닭이라 가슴살이 육계보다 질기고 뻑뻑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닭다리는 첫 맛은 매우 부드럽고 뒷맛은 쫄깃했다. 뒤적거리다 보니 간과 모래주머니(일명 닭똥집), 닭발이 눈에 들어와 반가웠다. 좀처럼 내놓는 식당이 없어서 닭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항상 아쉬워하는 부위다. 유 씨는 “우리가 직접 잡으니까 넣어드린다. 먹어 보면 맛도 있어 단골손님들이 꼭 찾는다”고 했다.
반찬은 백김치가 시원하고 깔끔했다. 지난해 가을 텃밭에서 수확한 배추로 담근 것이란다. 올해도 부부는 밭 400평에 감자와 대파 고추 열무 배추 등을 심어 손님들에게 내놓을 계획이다. 벌써 밭 한쪽에는 닭볶음탕용 감자가 심겨 있었다. 비료는 닭털과 닭똥을 섞어 만든 퇴비를 사용한다.
부부가 처음부터 착한식당을 운영한 건 아니다. 3년 전까지는 키운 닭과 도매로 사들인 닭을 섞어서 팔았고, 조미료도 넣었다. 용인 신갈에서 돼지갈비집을 오래한 경험으로, 조미료를 쳐야 맛있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착한식당으로 변신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조미료가 좋지도 않다는데 집 밥처럼 해보면 어떨까?’ 한번 해봤더니 닭 본연의 맛이 살아나 괜찮았다. 하지만 손님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고민이 됐죠. 하지만 집 한 칸 없이 고생하다 손님들 덕분에 땅과 집도 생겼는데, 좀더 정직하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보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전남 함평의 농삿집 7남매 중 중간인 김 씨는 20세에 맨손으로 상경했다. 용인 신갈 토박이 유 씨 역시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부부는 어디 손 벌릴 곳도 없어 그저 한눈팔지 않고 부지런하게 살았다. 이사만 20번 넘게 다녔다고 한다.
이제 이름이 알려지고 수입도 늘었지만 부부는 더 힘들어졌다. 눈높이가 높아진 손님들 비위를 다 맞춰야 하고, 닭 잡아 파느라 부부는 밥 먹는 시간도 들쑥날쑥한다. 정기휴일인 월요일 외에는 쉴 틈이 없다. 매일 저녁 닭을 막사에 몰아넣고 보살피느라 하루도 집을 비울 수 없다. 여행은 엄두도 못 낸다.
“돈 욕심내면 못할 일이에요. 빈손으로 시작해 이만큼 살면 됐지. 얘들한테도 항상 말해요. 부모한테 기댈 생각 말라고요.”
용인=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