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새 정부 들어 공기업 사장 인사가 논란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국정철학을 언급한 후 부총리,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금융위원장이 이어서 ‘국정철학’을 기준으로 굳히고 있다. 때맞춰 총리실 산하 공직복무관리관실이 공기업 임원에 대해 감찰을 시작하자 앞선 정권에 의해 임명된 인사들은 줄지어 사표를 내고 있다. 그들도 5년 전에는 ‘국정철학’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동안 많이 보아왔던 풍경이다.
새 대통령과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마당에, 공기업 인사에도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기대하는 우리에겐 아쉬움이 크다. 이명박 정부에 의해 임명되었던 공기업 임원들의 유임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국정철학’을 넘어서는 인사기준과 방향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정철학 옆에 전문성을 양념처럼 첨부하기는 하지만 이제까지 경험으로 볼 때 국정철학을 넘어서는 공공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으면 전문성은 눈먼 어용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우려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새 정부의 ‘국정철학’에 의한 공기업 인사는 전두환 정권시절의 낙하산, 김영삼 정부하의 등산화 부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코드인사와 다를 것이 없는 실패를 반복하게 될 개연성이 크다. 그렇게 방치하기에는 우리나라의 공기업 규모와 중요성이 너무도 크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현재 295개의 공공기관이 있는데 이 중 30개 내외가 자산 규모와 자체 수입 비중에 따라 공기업으로 분류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수자원공사가 대표적인 공기업인데 이들의 빚이 어마어마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 하나만 해도 빚이 138조3900억 원에 이르러 부채비율이 467%에 육박한다. 상위 8대 공기업 부채만 합쳐도 324조 원에 달해 우리나라 전체 예산 342조 원과 맞먹는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신도시, 보금자리주택, 혁신도시 건설정책에 동원되고 수자원공사는 4대강 사업 시책에 동원되어 그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낙하산 인사를 감시해야 할 감사까지도 유사한 국정철학과 배경의 소유자들이 내려와 앉아있으니 경영에 견제가 되지 않는다. 240개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감사 250명 중 118명(47.2%)이 청와대 등 정치권 및 정부 공무원 출신이다.
공기업은 정권 주변 인사의 안식처가 아니며, 정부의 빚을 은폐하는 은닉처도 아니다.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을 떠받치는 인프라로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의 운영은 국정철학보다는 공공성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고 전문성을 겸비한 인사들에게 맡겨져야 한다. 현재의 외양만 멀쩡한 임원추천 절차를 개선할 대안으로 영국의 공공기관인사감독관(OCPA) 방식을 제안하고 싶다. 이 기관은 공공기관 임원 인사에 공공성과 능력을 최우선시하라는 사회적 임무를 부여받고 설립되었다. 모든 공공기관 임원추천 회의에 OCPA는 위원 일부를 추천할 수 있다. 일반 국민 중 지원자를 공개모집하여 취지와 관련 규정을 철저히 교육시킨 다음 인사위원으로 보내는 것이다. 비록 한 명일지라도 문제가 발견될 때 이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언론과 국회, 그리고 국민에게 그 사실을 알리기 때문에 효과는 크다. 좌우의 국정철학을 넘어 사회적 공공성과 역량 기준으로 공기업 인사를 단행하는 영국의 개혁 사례를 우리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