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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북 카페]‘가지 류스케의 정견’

입력 | 2013-04-13 03:00:00

일본정치, 단숨에 알고싶은가요… 이 생생한 만화책이 ‘딱’입니다




1970, 80년대 일본이 고도 성장을 이어갈 때 주요 뉴스는 대부분 ‘경제’였다. 일본 기업의 움직임과 기술 개발은 한국 기업에 큰 시사점을 줬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잃어버린 20년’을 맞았고 경제 뉴스의 비중도 크게 줄어들었다.

지난해 6월 특파원 부임 이후 가장 많이 다룬 기사는 ‘정치’다.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가 얽혀 있어 외교를 포함한 정치 뉴스는 항상 뜨거운 감자가 돼 왔다. 하지만 일본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어 한국과 많이 다르다. 기초 지식 없이 일본 정치를 접하면 잘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본 정치를 쉽게 공부하고 싶다면 ‘가지 류스케(加治隆介)의 정견’이라는 책을 추천한다. 만화책이다. 저자 히로카네 겐시(弘兼憲史·65) 씨는 1991년 4월부터 1998년 11월까지 7년에 걸쳐 책을 완성했다.

만화책이라고 해서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등장인물과 정당은 허구지만 각종 상황은 사실에 기초해 있다. 신진 정치가들이 ‘바이블’로 여길 뿐 아니라 2000년에 만화를 드라마로 만들자는 초당파 의원연맹이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최종적으로 드라마로 나오지는 못했다.

만화는 식품회사에 다니는 가지 류스케 씨(39)가 정치인인 아버지의 사고사(事故死) 이후 선거구를 물려받아 정치인으로 일어서는 과정을 그렸다. 마지막 회에서 그는 일본의 총리로 올라선다.

책을 읽으면 △일본엔 왜 세습 정치인이 많은지 △선거운동은 어떻게 펼치는지 △총리는 어떻게 결정되는지 △당수가 왜 검은돈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 △내각불신임안은 어떻게 결의되는지 등 일본 정치 구조를 자세히 알 수 있다. 1990년대에 그려진 만화이지만 현재 상황에 대입해 봐도 전혀 문제가 없다. 바꿔 말하면 일본 정치계는 그만큼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 이야기도 많이 등장한다. 가지 씨가 중의원 의원직을 사퇴하고 잠시 쉴 때 그는 한국을 방문했다. ‘일본에서 정치를 하기 위해선 한국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서울의 분위기를 묘사할 때는 역동적인 한국의 모습을 전했다. 하지만 한국인이 포장마차에서 일본인에게 시비를 거는 장면에선 일본에 대한 뿌리 깊은 한국인의 피해의식을 그렸다.

저자는 각종 정치 이슈도 다뤘다. 2013년 현재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헌법 개정과 집단적자위권 허용에 대해서도 묘사했다. 저자의 주장은 자민당이 내세우는 논리와 똑 닮았다.

예를 들면 동맹국이 공격을 당했을 때 일본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반격할 수 있는 권리는 집단적자위권. 저자는 부산에서 시모노세키(下關)를 오가는 대형 여객선이 북한 게릴라군의 공격을 받는 장면을 통해 집단적자위권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자위대 함장은 공격 명령을 내려 북한 선박을 박살냈지만 규율 위반으로 옷을 벗어야 했다. 일본의 현행 헌법상 다른 국가가 일본을 공격했을 때만 방위 차원에서 그 국가를 공격할 수 있기 때문. 저자는 “북한도 이런 내용을 알고 자위대 앞에서도 공공연히 한국 여객선을 공격했다”고도 언급했다. 한 가지 주의할 점. 재미있게 일본 정치를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고 해서 중고교 학생들에게까지 추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엄청난 분량의 글자에 지쳐갈 때 즈음이면 야한 장면들이 꼬박꼬박 등장하기 때문이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