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전쟁 그리고 핵폭탄/유르겐 브라우어,후버트 판 투일 지음/채인택 옮김528쪽·3만7000원/황소자리 펴냄
경제학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전쟁지도자들은 경제이론을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중세시대 통치자들은 잘 지은 성채 하나가 상비군을 유지하고 들판에서 전투를 치르는 비용보다 훨씬 싸게 먹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황소자리 제공
김종하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원장
신문과 TV에서는 한계 수위로 치닫는 북한의 도발을 보도하면서도 핵무기를 사용한 전면전 발발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국민을 안심시키지만, 국방과 안보를 공부한 필자가 볼 때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사실 사이버 테러와 생화학 무기로 대표되는 북한의 비대칭 전력은 재래식 병력을 출동시키지 않고도 얼마든지 우리의 일상 터전과 생명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학으로 보는 전쟁의 역사’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이 책은 매우 각별할 수밖에 없다. 흔히 우리가 ‘무생물적 산술과학’으로 오해하기 쉬운 경제학은 불확실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내리는 인간의 의사결정에 관한 학문이다. 예를 들면 단위면적당 가격이 저렴한 도시 근교의 전원주택에서 한가한 노년을 보낼까, 아니면 보안과 경비가 잘된 도심의 공동주택을 구입할까 등의 심리적이고 이성적인 결정 말이다.
1960년 2월 13일, 프랑스가 알제리 르간에서 60kt의 원자폭탄을 실험한 것을 ‘대체의 법칙’이라는 경제이론으로 분석한 대목도 눈여겨볼 만하다. 냉전의 두 주축인 미국과 소련의 핵 독점을 깨뜨린 이 사건을 두고 미국이 발칵 뒤집힌 것은 프랑스가 개발한 핵폭탄의 위력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서방의 핵우산 역할을 자처하던 미국을 대놓고 불신했다는 것, 그리고 피차 전멸을 의미하는 핵무기의 특수성을 전략적으로 이용해 드골 정부가 정치 경제적 거래를 시도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후 상황이 참 복잡하게 얽혀들었지만, 프랑스는 이 작은 핵폭탄을 지렛대 삼아 미국으로부터 적잖은 이익을 챙겼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추락한 국가적 자긍심까지 회복했다. 그러니 현재의 북한처럼 궁지에 몰린 집단이 핵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군사적 사건과 경제이론이 수시로 교차하는 이 두툼한 책을 한달음에 읽었지만 그중 섬뜩할 만큼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사이버 테러와 생화학 무기로 대표되는 21세기의 비대칭 전력, 그리고 사설 용병업체와 민간 보안업체의 경제적 작동 원리를 설명해 주는 마지막 장이다.
인터넷과 생물학, 교통이 발달하면서 현대의 전쟁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게릴라식 전투로 급속히 옮아가고 있다. 사이버 테러는 9·11테러 이후 강화된 보안검색 속에서 활동반경이 줄어든 국제테러조직이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개발한 돌파구였다. 북한도 이미 오래전부터 사이버 해킹 인력과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는 데 공들여 왔다.
핵미사일 개발은 궁지에 몰린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펼칠 수 있는 가장 이문이 남는 장사다. 북한이 최근 동해안으로 이동 배치한 무수단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동아일보DB
핵과 미사일뿐 아니라 각종 사이버 테러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으면서도 정작 21세기형 전쟁에 대한 정의조차 제대로 내리지 못하는 지금, 한국의 안보 담당자와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우리에게 절실한 군사적 통찰과 진실이 이 한 권에 담겨 있으니 말이다.
김종하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