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터지자 美서 돌아와 재입대
은평평화공원 윌리엄 쇼 대위 동상
6·25전쟁 당시 외국에서 유학하던 한국 학생의 편지가 아니다. 미국인인 윌리엄 해밀턴 쇼 해군 대위(한국명 서위렴)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이 끝난 뒤 이성호 당시 해군 중령(5대 해군참모총장)에게 한 말이다. 미군 장교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군복무를 마친 쇼 대위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2의 조국’ 한국을 위해 자진 재입대해 싸우다 녹번리(현 서울 은평구 녹번동) 전투에서 산화했다.
녹번동 은평평화공원에 가면 그의 한국사랑과 희생정신을 기리는 동상(사진)이 있다. 높이 2.2m(기단 포함 3.5m)의 동상은 정복을 입고 차렷 자세로 자신이 피를 흘렸던 이 땅을 응시한다. 2008년 안병태 전 해군참모총장의 건의로 논의를 시작해 은평구와 재향군인회가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2010년 6월 6·25전쟁 60주년을 기념해 현 위치에 동상을 세웠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1950년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한국을 돕기 위해 미 해군 대위로 재입대했다. 부모에게 “한국인들은 자유를 지키려고 분투하고 있는데 이를 도우려 흔쾌히 가지 않고 전쟁이 끝난 뒤 돌아가려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한국으로 향했다.
이후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탈환 작전에 참가한 그는 1950년 9월 22일 미 해병 7연대의 서울 진격에 앞서 녹번리에서 후방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인민군의 총탄을 맞고 산화했다. 사망 당시 29세였던 쇼 대위는 현재 부모와 함께 서울 마포구 합정동 외국인 묘역에 잠들어 있다. 1956년 정부는 그에게 금성을지무공훈장을, 미국 정부는 은성훈장을 각각 추서했다.
김재영 기자 red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