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아빠’라는 단어 뜻도 모르고 자라 아무 잘못없는데 왜 이런 고통 겪어야하나”
어린 아들에게 늘 ‘차 조심’을 당부할 정도로 안전운전을 최우선으로 여겼던 고(故) 김모 씨(오른쪽). 단란했던 가정은 반칙운전자의 과속으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사진은 사고 발생 6개월 전 김 씨 가족이 휴가 떠났을 때의 모습. 김 씨 유족 제공
1996년 1월 2일 오전 4시경 영동고속도로 신갈 분기점 부근에서 사고를 당한 김모 씨(당시 38세)도 과속 사고의 피해자다. ‘무사고 무딱지’를 자랑하는 모범운전자였던 김 씨는 사고 당일에도 안전거리 유지는 물론이고 제한속도(1996년 당시 시속 80km)를 지키며 운전 중이었다. 하지만 뒤를 따르던 오모 씨(48)의 차량은 제한속도를 50km나 넘긴 시속 130km로 질주했다.
오 씨는 앞선 차량이 브레이크를 밟자 급히 차로 변경을 시도하다 옆 차로를 달리던 김 씨의 차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두 차량은 불이 붙은 채 함께 굴렀고 김 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오 씨는 현장에서 도망쳤다가 6시간 후 자수했다.
남편을 잃은 뒤 박 씨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힘들게 마련한 아파트는 생활비 때문에 팔았다. 매일 저녁이면 아빠를 찾는 아이들을 달래야 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박 씨는 온종일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옆집 아이가 ‘아빠’ 하면서 자기 아빠에게 달려가자 네 살이던 제 딸이 덩달아 ‘아빠’라고 소리치며 쫓아가더라고요. 나중에 물어보니 아빠라는 말의 뜻을 몰랐던 거예요. 옆집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른다고 생각했나 봐요. 가슴이 무너졌죠.”
남편의 부재는 익숙해지기 힘든 일이었다. 17년이 지난 지금도 박 씨의 가족은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사고피해가족지원비로 생계를 이어가며 여전히 힘든 삶을 견디고 있다. ‘교통사고’ ‘아버지’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이 가정의 불문율이다. 박 씨는 “남편이나 우리 가족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며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이런 엄청난 피해를 막기 위해 반드시 반칙운전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