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창조경제의 현주소
하지만 인구수를 감안한 전체 유튜브 동영상 업로드 수에서 한국은 35개 조사대상 국가 중 뒤에서 두 번째인 34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은 “한국이 문화를 소비하는 데는 매우 적극적이지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데는 소극적”이라며 “겁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이스라엘의 ‘후츠파 정신’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동아·베인 창조경제지수(DBCE 지수) 평가의 32개 핵심지표 중에는 내국인 특허출원 건수, 정보통신기술(ICT) 활용성 등 한국이 1위에 오른 것도 있지만 전체 순위는 중하위권으로 곤두박질쳤다. 한국인의 약점인 자기표현 부족, 획일적인 교육 환경 등과 관련된 지표가 순위를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창조경제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전국 대학생 기술사업화 경진대회에서 입상한 한국 대학생들이 1월 독일의 대표적인 강소기업인 증강현실 업체 메타이오(Metaio)를 찾았다. 학생들은 이 기업의 창업자인 토마스 알트 박사에게 벤처기업가로 성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독일인인 알트 박사는 “가장 현실적인 요소는 영어 실력”이라며 “비즈니스의 언어는 영어”라고 잘라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배우며 영어 사교육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있는 한국인의 영어 실력은 어떨까. 토플(TOEFL) 평균점수는 최근 상승세지만 기본적 자기표현 도구인 스피킹 영역 점수는 35개국 중 29위였다. 세계를 무대로 창업하고 기업을 확장해야 하는 국내 기업가들에게는 영어 역시 여전한 걸림돌인 것이다. 싸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는 정곡을 찌르는 영어 표현들이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덕분이었다. “드레스 클래시, 댄스 치지(Dress classy, dance cheesy·점잖게 빼입고 웃기게 춰라)” 같은 그의 말은 교과서에서 보기 힘든 표현이다.
낮은 경제적 세계화 지수(32위)도 세계로 나아가기보다는 국내 시장에 안주하는 한국인의 성향과 관련이 깊다. 이 지수는 무역량, 외국인 직접투자(FDI)와 수입 관련 규제를 수치화해 산정한 세계화의 수준을 말한다. 예를 들어 무역량이 많으면 높아지지만 대표적인 무역장벽인 관세수입이 많으면 낮아지는 식이다.
경제적 세계화 지수는 네덜란드, 아일랜드, 벨기에 등 작은 나라들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국가에 외국과의 활발한 거래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 지수가 최하위권이었다.
문규학 소프트뱅크코리아 사장은 “한국은 어떤 인재를 키워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전혀 돼 있지 않다”고 말한다. 모두가 자녀들을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키우기에만 급급해 멀리 보고 인재를 키우려는 교육에 대한 철학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한국의 획일적인 교육 환경은 창조지수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획일적인 교육환경으로 인한 낮은 창의적 교육 인프라가 창조경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디어 창출을 막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학업성취도 지수는 3위로 최상위권이었다. 학업성취도는 각국의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 학업성취도 비교 평가(PISA)에서 읽기, 수학, 과학시험 점수로 측정했다. 이 지수가 높은 것은 한국 학생들이 대체로 머리가 좋은 덕분이기도 하지만 시험 성적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교육방식 또한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의 자기주도 학습능력 지수는 31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시키는 것은 잘하지만 자율적인 학습능력은 떨어지는 셈이다. 한국 학생들은 질문에도 인색한 편이다. 시키는 것만 잘하려 하기 때문이다. 질문이 없으면 발전도 없고 표현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뉴저지 주 영재학교 버겐카운티아카데미의 김덕양 교사의 말은 곱씹어볼 만하다. “한국 교육의 시작은 ‘이거 알아?’인데 서구의 교육은 ‘이거 할 수 있어?’에서 시작하는 때가 많다. ‘이거 알아?’는 맞거나 틀리거나 둘 중 하나인 반면 ‘이거 할 수 있어?’는 설명과 토론으로 이어져 심화학습이 가능하다.”
○ 재고해야 할 핵심성과지표
한국은 연구개발(R&D)이나 특허출원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비율은 5위, 내국인 특허출원 건수는 1위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이러한 수치의 우위는 명확한 창조적 결과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각종 사업의 목표달성 정도를 측정하는 핵심성과지표(KPI)를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개발비와 특허출원 건수 대신 기술무역수지 배율이나 창조적 제품 수출액 비중(한국 28위)을 평가하는 등 핵심성과지표를 바꿔 질적인 역량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수 베인앤컴퍼니 파트너는 “견고한 창조경제를 구현하려면 한국이 부족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며 “이를 방치하고 R&D 투자를 늘리거나 특허 확보에만 열을 올리는 정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