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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로 가는 길]도전 한번 실패하면 낙오자로… 창업이 두려운 한국

입력 | 2013-04-15 03:00:00

<1>한국 창조경제의 현주소




동아·베인 창조경제지수(DBCE지수) 평가에서 한국은 중국보다도 창조경제 역량이 떨어진다는 진단을 받았다. 남의 아이디어를 모방해 대량 생산하는 ‘추격형 경제’의 대명사로 알려진 중국이 한국을 앞선다니…. 취재팀은 조사가 잘못된 것 아닌가 의심했다.

그러나 중국은 기존의 안정적인 경제구조에 머무르지 않고 창업, 신사업에 도전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우리보다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창업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인식 평가에서 35개국 가운데 각각 17위, 2위에 올라 26위, 11위에 머문 한국을 앞섰다. 창업을 선택하려는 의지, 창업을 택했을 때 주변에서 장려하려는 분위기 면에서 한국은 중국에 뒤졌다는 뜻이다.

○ 한국인 “새로운 도전이 두려워”

한국은 행정 절차의 편의성 등 창업을 북돋는 제도 측면에선 중국보다 앞선 것으로 평가됐다. 정보통신기술(ICT) 등 손쉽게 창업할 수 있는 인프라도 한국의 강점이다. 하지만 창업은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과 사회 분위기가 창조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많은 인재가 대기업 취업이나 고시공부, 의대 진학에 몰리는 현실이 이를 반영한다. 창업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도를 조사한 결과 중국은 14위였으나 한국은 29위로 최하위권에 그쳤다.

세계의 돈이 중국에 몰리면서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외국인 직접투자(FDI)에서도 중국은 한국을 각각 5계단, 5계단, 20계단 차이로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점점 창업에 도전하는 사회가 되고, 한국은 점점 창업을 두려워하는 사회가 될 소지가 크다는 얘기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살아남는다’는 말이 있다. 악덕 기업가가 자산을 빼돌려 개인적으로 치부하는 관행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개인보증을 서 창업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남의 얘기다. 창조경제의 첨병이 돼야 할 창업가들은 한 번 실패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토로한다. 범죄행위까지 감싸줄 필요는 없지만 창업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정지훈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은 “제조 대기업이 이끄는 효율경제 시스템에서 창업가, 벤처기업이 이끄는 창조경제 시스템으로 선회해야 할 시점”이라며 “창조경제는 효율경제와 달리 저(低)효율과 실패를 감수하고 리스크(위험)를 줄여주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버려지는 ‘귀중한 실패’들

2008년 중소기업청이 주관한 창업경진대회에서 고등학생 신분으로 장려상을 받은 박장석(가명·22) 씨. 그는 이듬해인 2009년 창업을 했다. 당시 받은 상금을 투자해 재활 의료기기 시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한 그는 두 번째 아이템으로 피부관리기기에 도전했다.

박 씨는 중기청의 사업화 지원 프로그램에 신청했지만 탈락했다. 아이템은 좋은데 한 번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설명이었다. “주변에선 (다들 그러는 것처럼) 다른 사람 명의를 빌려 지원하라고 했지만 양심상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한 번 해본 사람이면 더 잘할 수 있으니 오히려 더 지원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현 제도는 고교 시절부터 발명에 빠져 창업을 꿈꿨던 박 씨의 아이디어를 창업경진대회를 통해 발굴하고, 사업화에 나서게 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사업 확장을 돕는 데에는 눈을 감았다. 성공 경험을 선순환시키는 데 실패한 셈이다.

이런 점 때문에 한국은 DBCE지수의 창조경제 4단계 중 창업가, 기업이 새로운 일에 도전해 성공하거나 실패한 경험을 재활용하는 ‘성공의 선순환’에서 35개국 가운데 28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특히 한 번 실패한 기업을 정리하는 파산 절차의 용이성은 31위였다. 도덕적 해이 없이 최선을 다했다가 실패한 ‘귀중한 실패’를 배려하는 절차가 없다는 게 문제로 지목됐다.

○ “나는 창조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걸림돌

숙명여대에서 제품 디자인을 가르치는 토드 홀로우벡 시각영상디자인학과 교수는 수업 때마다 학생들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는다고 했다. “한국 학생들은 너무나 창조적입니다. 제출하는 제품 아이디어에 매번 깜짝 놀라죠. 그런데 문제가 뭔지 아세요? 하나같이 자신이 창조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홀로우벡 교수는 한국 특유의 겸손한 문화가 창조성을 발현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DBCE지수의 첫 단계인 아이디어 창출에서 한국은 31위로 꼴찌에 가까웠다. 1∼3위인 캐나다, 뉴질랜드, 네덜란드 외에 슬로베니아(18위), 체코(22위), 일본(30위) 등도 한국을 앞섰다.

반면 한국은 아이디어의 사업화(19위)와 사업 확장(14위) 단계에서는 중위권에 올랐다. 사업화 단계에선 앱(응용프로그램) 개발 등 ICT를 기반으로 한 사업모델을 만들기 용이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창업에 필요한 행정 절차의 편의성 측면에서도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을 앞섰다. 사업 확장 단계에서도 한국은 첨단산업 비중이 높고 기업공개가 상대적으로 원활하다는 점에 힘입어 중상위권에 올랐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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