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가정서 사이코패스 양산… 소년범 선도해야 강력범 줄어
이금형 경찰대학장은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등 민생치안 전문가다. 광주지방경찰청장 시절엔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경찰들에게 진압복 대신 검은색 양복을 입게 하는 등 시국치안에도 창의성을 보여줬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봄을 시샘하듯 눈발이 흩날리는 날, 경기 용인의 경찰대를 찾았다. 한국에서 살기가 갈수록 불안하다는 요즘, 여경으로서의 성공담보다 치안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듣고 싶었다.
―범죄자들을 직접 만나셨을 텐데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있나요.
성폭력 사건, 치료과정서 단서 많이 찾아
―‘마포 발바리’ 검거에 공을 세웠다고 들었습니다.
“2006년 마포경찰서장에 부임해 보니 직원들이 의욕이 없어요. 2년간 샅샅이 뒤졌는데도 범인을 못 잡아서죠. 매일 수사 상황을 보고받고 직원들에게 삼겹살도 사주면서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우선 범인의 몽타주를 그려 뿌리게 했죠. 몽타주는 여러 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범인이 행동에 제약을 느껴서 추가 범죄를 예방할 수 있지요. 시민들도 몽타주가 돌아다니면 더 조심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다시 탐문수사를 벌이던 중 신발가게에서 단서를 얻었어요. 10만 원짜리 수표를 훔친 범인이 신발가게에서 잔돈을 거슬러 갔습니다. 가게 주인은 은행에서 수표가 사용 중지된 걸 확인하고 아까워서 비닐봉지에 넣어 보관했다는 겁니다. 비닐봉지에 들어 있었으니 지문이 잘 남아 있었죠. 이때부터 수사가 급진전돼 범인 김재철(당시 31세)을 검거할 수 있었습니다.”
“성범죄나 아동범죄는 피해자만 잘 보호해도 사건의 단서를 찾을 수 있어요. ‘마포 발바리’ 사건 때는 여경이 피해 아동을 언니처럼 돌봐줬죠. 아이를 안심시킨 다음 범행 당시처럼 눈을 가리고 차를 태웠더니 “문 여는 소리가 ‘드르륵’ 났다”고 말하는 거예요. 일반 승용차가 아니라 승합차라는 얘기죠. 그 시간에 그 일대를 지나간 승합차를 모두 추적해 범인을 잡았습니다. 일명 ‘도가니 사건’이라 불리는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도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사건 해결의 열쇠를 많이 찾았지요.”
―광주지방경찰청장 때 ‘도가니 사건’을 재수사해 14명을 형사 입건하셨죠.
“7년 전 사건인 데다 피해자들이 지적 장애인들이어서 피해를 입증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이미 한 번 무혐의로 끝난 사건이라 ‘잘해야 본전’이라는 회의론이 많았지요. 신의진 소아정신과 전문의(현 새누리당 의원), 이명숙 변호사 등 전문가들이 애를 많이 썼어요. 이 사건을 통해 아동이나 장애인 사건 때는 심리전문가가 법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죠.”
―예전엔 한국이 비교적 안전한 나라였는데 요즘은 ‘묻지 마 범죄’ 등 불안하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도 다 이유가 있다는 얘기네요.
“사이코패스도 진화합니다. 범행 초기에 빨리 잡아야 해요. 처음엔 죄책감과 불안감을 느끼지만 범행이 반복될수록 대담하고 잔인해집니다. 소년범 때가 중요한데 성장 과정의 아픔을 이해해주고 선도해야 나중에 강력범이 되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소년범 선도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을 4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근절하겠다고 했습니다.
“4대 사회악은 서로 연관이 있어요. 가정폭력을 당한 사람이 비행 청소년을 거쳐 범죄자가 되고, 학교폭력 가해자도 커서 범죄자가 되는 사례가 많아요. 학교폭력을 막으려면 교사들이 세심해져야 해요. 담임선생님이 반 채팅 방을 만들어 카카오톡으로 아이들에게 자주 안부를 묻고 관심을 가지면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경찰이 피해자를 봐도 느낌이 오는데, 교사들은 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어야죠.
성폭력은 발생했다 하면 6, 7개 가정이 무너지는 무서운 범죄입니다. 실의에 빠진 피해자나 가족이 자살하고 명절 때 가족모임이 사라지면서 피해자의 직장과 학교에까지 영향을 주지요. 안전이 복지의 기초라면 사회 안전을 위해 4대악 근절은 꼭 필요합니다.”
―순경 출신으로 경찰 고위직에 오르는 건 100m 달리기 하는데 출발선 50m 뒤에서 뛰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요. 경찰청 내에서 ‘또순이’ ‘악바리’라고 불리던데요.
“시부모님이 아이들을 다 키워서 저는 집에서 ‘계모’라고 불렸어요. 일하면서 대학 졸업하고 박사학위까지 따려니 힘들었죠. 녹음기 5개가 망가질 정도로 항상 녹음기를 틀어놓고 공부했지요.(이 학장은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3녀를 두고 있다)”
―경찰대를 어떻게 이끌 생각인가요.
“지금까지 ‘엘리트 양성소’였다면 이제는 ‘민생치안 전문가 양성소’로 만들고 싶어요. 경찰의 86%가 경사 이하입니다. 경찰대를 나와 26, 27세에 현장에 투입되는데 자식 같은 상사가 와서 실무도 모르고 탁상행정을 하면 지휘통솔이 될 수 있겠습니까. ‘112 지령실’ ‘지구대 파출소’ ‘범죄 지리정보 시스템’ 등 모의 현장을 만들어 실무를 익히도록 하겠습니다. 안전이 중요한 시대에는 인재들이 민생치안에 헌신하는 것이 국민의 뜻을 받드는 길입니다.”
―경찰을 지망하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경찰은 낮밤이 따로 없는 직업입니다. 강인한 심신이 필요하죠. 대신 피해자를 도와주는 보람으로 삽니다. ‘제복이 멋있다’ 이런 막연한 동경으로 직업을 선택해선 안 됩니다(웃음).”
▼ 1946년 첫 조선여경, 기생 선도-성매매 단속 맡아 ▼
창설 67주년 맞는 여자경찰
1972년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서 아침 출근시간에 교통정리를 하는 여경. 동아일보DB
동아일보 1946년 6월 3일자에는 첫 여자 경찰관 모집이 그날로 마감된다는 기사가 실렸다. 우리나라에서 여경(女警)이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미군정 시절인 1946년. 광복 직후인 1945년 경찰 조직이 생기고 난 다음 해다. 7월 1일 경무부 공안국에 여자경찰과가 처음 생겨 여성 경찰국장 고봉경 총경을 비롯한 간부 16명과 여경 1기생 64명 등 총 80명으로 출발했다.
초기 여경들은 주로 성매매 단속이나 청소년 선도 업무를 담당했다. 1948년 공창(公娼)이 폐지된 후 사창(私娼)이 늘어나자 불법 포주나 접대부 단속이 여경의 큰 임무로 떠올랐다. 고급 요정들의 업태 변경으로 기생 등이 실직(失職)을 하게 되어 이들의 선도와 고용 대책을 세우는 일에도 관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1957년까지는 서울 인천 부산 대구 등에 여자경찰서가 따로 있어 교통 안내, 윤락여성 선도 등을 전담했다. 그 후 여자경찰서와 여자경찰과가 폐지됐고 업무도 점차 수사, 대공(對共) 등으로 다양해졌다. 전자교통신호가 개발되기 전, 수(手)신호로 교통정리를 하던 시절에는 여자 경찰이 교통정리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올해로 창설 67주년을 맞는 여경들은 여러 가지 차별과 수난을 겪기도 했다. 1987년엔 신체검사를 하던 시험관들이 지원자들에게 스커트를 걷어 올리라고 했다가 “경찰 뽑는 데 각선미 보느냐”고 반발한 사건이 있었다. 1994년엔 한 남성이 교차로에서 신호위반 단속을 하던 여경의 뺨을 때리고 욕설을 퍼부었다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80년대에는 여경이 인기 직업으로 떠올라 경쟁이 치열했다. 1983년 치안본부는 여경 100명 모집에 1만7388명이 응모해 173.9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취업난이 심한 요즘은 입사 경쟁률 100 대 1을 넘는 직장이 흔하지만 당시엔 보기 드문 경쟁률이었다.
여경의 숫자는 1986년 680명(전체 경찰의 1%), 2000년 1793명(2%)에 불과했으나 최근 10여 년 사이에 많이 늘어났다. 2013년 3월 말 기준 7815명으로 전체 10만2738명의 경찰 가운데 7.6%를 차지한다. 지구대에 1858명, 경무 1486명, 생활안전 분야에 1063명이 근무하고 있다. 경찰대는 신입생 120명 가운데 10%인 12명을 여학생으로 선발한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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