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경제부 기자
금융위원회에도 루틴은 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과거 업무를 새로운 일인 척 반복하는 ‘5년 주기 루틴’이다.
지난 정부 초기 금융위는 금융권에 내핍경영을 하라는 경고를 보냈다. 때맞춰 정부 고위당국자로부터 금융공기업 수장의 재신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는 발언들이 나왔다. 이후 금융위는 금융회사 전현직 대표를 징계하며 금융계 기강을 다잡았다.
정책 분야는 관료의 루틴이 지배하는 큰 무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민’을 화두로 꺼내자 금융관료들은 미소금융제도를 생각해냈다. 최근 관료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서민금융 공약인 국민행복기금의 세부정책 마련에 매달려 있다. 방법은 좀 달라도 서민을 금융 측면에서 돕는다는 취지는 같다. 당국자는 “비슷한 서민금융들을 합치고 싶지만 각 정부의 치적이라 건드릴 수 없다”고 말한다.
‘밥그릇 싸움’도 반복될 조짐이 있다. 2011년 당국은 소비자보호를 명분으로 들며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을 제안했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이 자리다툼을 벌이다 차기 정부로 과제를 넘겼다. 현 정부에선 금융위와 금감원이 주가조작사범 근절이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일전을 벌일 태세다. ‘어떻게 할까’보다는 ‘누가 주도할까’에 관심을 보인다.
민간 출신 고위공직자 길들이기는 당국의 오랜 루틴이다. 2008년 3월 입각한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업적이 많지만 조직을 혁신하기보다는 관료사회에 흡수됐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올 3월 임명된 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도 그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한 관료는 “막 정부에 들어온 민간인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류현진이 성공한 것은 납득할 만한 루틴을 적절히 활용해서이기도 하지만 감독이 선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은행 증권업이라는 운동장의 상태는 운동장을 뛰는 선수(금융사)가 제일 잘 안다. 금융당국은 5년마다 반복해 온 소모적 루틴들을 접는 대신 선수의 기를 살려주는 국민감독이 돼야 한다.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축적해 온 관료의 생존루틴으로는 서민과 중소기업을 들러리로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