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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주먹’ 재미는 있는데… 강우석 전설에는 성이 안차네

입력 | 2013-04-16 03:00:00

[민병선 기자의 영화와 영원히]




‘전설의 주먹’(10일 개봉)이 생각만큼 세지 못하다. 강우석 감독(53·사진)의 이 영화는 13, 14일 각각 18만7048명, 18만9110명의 관객을 모았다. 할리우드 영화 ‘오블리비언’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 개봉 첫 주말 40만 관객은 영화 비수기인 점을 감안하면 나쁜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강우석이란 이름에는 성이 안 찬다.

이 영화에 대해 평단에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기자의 평가는 ‘별로’다. 영화는 고교 시절 주먹 좀 쓰는 친구였던 임덕규(황정민), 이상훈(유준상), 신재석(윤제문), 손진호(정웅인)가 40대가 돼 리얼리티 격투기 프로그램인 ‘전설의 주먹’을 통해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다.

영화에는 강 감독이 강조한 ‘재미’의 요소들이 고루 담겼다. 화끈한 격투기 액션 장면이 쉼 없이 펼쳐진다. 재벌 회장이 된 진호가 임원들을 야구방망이로 때리고 맷값을 지불하는 장면은 신문 사회면에서 봤던 사건을 풍자한 맛이 있다. 자신이 국정원 요원이라고 주장하는 서강국(성지루)의 출연도 웃음을 자아낸다.

감동을 이끌어낼 요소들에도 신경을 썼다. 영화에는 군사정권 시절이던 1980년대 폭력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권투 유망주였던 덕규는 “선배가 우선”이라는 석연찮은 이유로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진다. 상훈은 아버지가 재벌인 진호네 운전기사라는 이유로 진호에게 꼼짝 못하면서 다른 아이들에게 주먹을 휘둘러 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나이를 먹어서도 거대한 체제는 개인을 짓누른다. 상훈은 진호 회사에서 홍보부장으로 일하며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은 다시 돈 때문에 전설의 주먹이란 폭력의 장으로 뛰어들지만 모든 걸 거부하고 자기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전설의 주먹’은 배우들의 연기, 감독의 연출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이지만 결정적 한 방이 없다. ‘공공의 적’의 재밌는 캐릭터, ‘실미도’의 카타르시스가 없다. 시네마서비스 제공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따로 노는 느낌이다. 그래서 재미도 감동도 미지근하다. 네 친구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는 씨줄과 날줄로 얽히지 못하고 면과 나일론을 짜놓은 듯하다. 이런 구조는 결과적으로 극 후반에서 카타르시스를 주지 못한다. 한 평론가는 “‘전설의 주먹’은 아빠 세대는 이랬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화법을 구사한다. 40대 이상 남성 관객 이외에는 공감하기 힘들어 보편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강 감독의 ‘주먹’이 예전보다 약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강 감독은 과거 ‘이슈 파이터’였다. 그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들을 많이 다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년)에는 우리 교육의 성적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투캅스’(1993년)는 경찰 비리를 신랄하게 풍자했고, ‘실미도’(2003년)는 숨기고 싶은 과거였던 북파 공작단 문제를 이슈화했다. 여기에 강 감독 특유의 유머가 곁들여져 대중적인 폭발력을 가진 영화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강 감독도 이제 50대가 되면서 젊은 관객과 소통하는 감각이 조금 무뎌진 것일까. 옛날처럼, ‘공공의 적’의 강철중처럼 거대 이슈에 저돌적으로 부딪쳐 보면 어떨까 싶다.

강 감독은 한국 영화에 많은 공헌을 한 인물이다. 그는 1990년대 투자, 배급, 제작을 겸하는 시네마서비스를 설립해 한국 영화를 산업화의 길로 이끌었다. 그러면서도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 같은 작가주의 영화에 투자하고, 강우석아카데미를 설립해 후진을 양성했다.

CJ E&M, 롯데시네마, 쇼박스 등 대기업이 주도하는 영화계에서 그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그래서 많은 영화인들은 그가 다시 예전의 영향력을 회복하기를 바라고 있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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