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콘셉트카 ‘벤에이스’ 통해 엿본 자동차의 미래
3월 28일 공개된 현대자동차 콘셉트카 ‘벤에이스’(프로젝트명 HND-9). 현대자동차 제공
○ 1년여의 우여곡절 개발 비화
1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동관 4층의 선행디자인팀. 현대차가 미래에 내놓을 신차의 디자인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부서다. 현대차그룹 연구개발 총괄인 양웅철 부회장의 집무실도 같은 층에 있다. 보안은 철저하다. 스튜디오에 들어가기까지 3개의 출입 통제 문을 거쳤다.
벤에이스는 빠르면 내년 공개될 스포츠카 ‘제네시스 쿠페’ 후속모델(프로젝트명 VK)의 기반이다. 차 이름 벤에이스(Venace)는 통풍(vent)과 에이스(ace)의 합성어다. 선행디자인팀이 붙인 디자인 콘셉트는 ‘검객이 예리한 칼로 벤 대나무 같은 날카로움’이다. 삶의 가치를 중시하고 풍요로운 사고방식을 지닌 30, 40대 고소득자가 타깃이다.
지난해 초 개발진에게는 ‘국내 선두업체의 입지를 강화하고 현대차의 고급화를 이끌 모델을 만들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21명의 연구원이 속한 선행디자인팀은 내부 공모를 진행했다. 우크라이나 태생의 젊은 디자이너 미콜라 킨드라티신 연구원(29)의 스케치가 디자인의 기초가 됐다. 백승대 현대차 선행디자인팀장을 주축으로 한 7명의 개발진은 이를 토대로 지난해 3월 본격적인 설계에 착수했다.
백 팀장은 “디자인할 때는 실제 생산 가능 여부에 구애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제조 기술이 콘셉트카의 화려한 원형을 양산차에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이 됐고, 까다로운 디자인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노하우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스케치로 시작된 벤에이스는 미니어처와 찰흙 모델, 플라스틱으로 만든 실물 크기의 모델카를 거쳐 점차 형태를 갖췄다. 콘셉트카라고는 하지만 조명이나 도어 등을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수천 개의 자동차 부품을 넣었다.
우여곡절 끝에 개발된 벤에이스는 사내 품평회에서 현대차 최고경영진의 호평을 받았다. “너무 앞서 간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상당수가 “현대차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수작”이라며 힘을 실어줬다. 벤에이스는 ‘2013 서울모터쇼를 빛낸 베스트카’로 뽑혔다.
○ 현대차 개발 방향 보여줘
벤에이스는 현대차가 앞으로 선보일 디자인과 첨단 기술을 내다볼 수 있는 힌트다. 이 차의 디자인과 일부 신기술은 제네시스 쿠페의 후속모델은 물론이고 현대차가 개발 중인 고성능 슈퍼카(프로젝트명 ZK)에도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가 2009년 ‘신형 쏘나타’를 출시하며 선보인 디자인철학 ‘플루이딕 스컬프처’(Fluidic Sculpture·물이 흐르는 듯한 느낌의 조각 이미지)의 진화를 보여주는 모델이기도 하다. 화려한 장식선은 줄이고 섬세함과 자연미를 강조했다.
스크린은 자유자재로 휘어져 장착 위치나 표면의 굴곡에 구애받지 않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다. 자동차 업계에서 이 디스플레이가 적용된 것은 처음이다. 현대차는 향후 선보일 콘셉트카에도 이 장치를 달기로 했다.
운전대는 전투기의 조종간처럼 레버를 감싸 쥐는 형태다. 민첩한 조작이 필요한 스포츠카의 역동성을 강조했다. 운전대의 뚫린 부분을 통해 계기반을 볼 수 있다. 주행 중 시선의 이동을 줄이기 위해서다. 기존 음성 인식 기능을 넘어 몸짓으로 차를 조작하는 ‘제스처 인식 기능’도 이 차에 적용됐다. 예를 들어 손짓이나 시선 움직임에 따라 차의 일부 기능이 작동한다. 변속기는 기존 기계식 작동이 아닌 ‘시프트 바이 와이어(상하로 미는 방식으로 작동 편의성을 높인 전자식 레버)’다.
양산차는 콘셉트카를 통해 디자인을 개발한 뒤 엔지니어링 부서와 상품개발 부서가 논의해 생산을 시작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엔지니어링 측면에서 볼 때 벤에이스에 사용된 디자인과 기술의 구현에 큰 어려움은 없다”며 “상품성 검토를 거쳐서 머지않아 상당 부분 양산차에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