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주필
김일성은 민족사에 씻지 못할 비극과 재앙을 안긴 파괴적인 인간이었다. 전쟁을 일으키고 북한 주민들을 굶겨 한민족 수백만을 희생시켰다. 세습 독재를 위해 주민들의 행복권은 물론이고 기본 인권마저 유린했다. 며칠 전 어떤 젊은이들이 “김일성 생일, 무사히 넘어갈까요?” 하며 걱정했다. 대한민국 국민이 건국 대통령 이승만, 부국 대통령 박정희의 생일은 모르면서 김일성의 생일은 기억하고 신경 써야 하다니….
김일성 생일은 ‘고속 승진’했다. 북한은 1962년 4월 15일 김일성의 50회 생일을 임시 공휴일로 정하고 1968년에는 ‘명절 공휴일’로 승격시켰다. 1972년 그의 환갑 때 생일 행사를 본격화하고 1974년에는 ‘민족 최대 경사의 날’로 제정했다. 1994년 그가 사망한 뒤 ‘태양절’로 높였다. 주민 굶긴 인간 태양….
김정일 우상화도 만만찮다. 1942년 2월 16일이라는 김정일의 생일은 ‘광명성절(光明星節)’로 불리며 김일성 생일에 이어 북한에서 두 번째로 큰 명절이다. 태양절과 마찬가지로 각종 전시회와 체육대회, 예술 공연, 주체사상 연구토론회, 김정일화(花) 전시회 등의 행사가 열린다.
태양절도 광명성절도 세계가 비웃는 시대착오이다. 북한 지배집단이 핵무기와 함께 개인숭배로 체제를 지탱하겠다고 한다면 헛된 꿈이 되기 쉽다. 아무리 단속해도 자유와 민주와 문명의 햇살을 다 막지는 못할 것이다. 많은 주민의 마음속에는 태양도 광명성도 이미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옛 소련의 스탈린과 레닌, 그리고 동유럽의 독재 우상들이 어떤 비운을 맞았는지 북한 지배집단도 보았으리라.
1년 전에 등장한 세습 3대 김정은은 할아버지 아버지 같은 방식으로는 오래갈 수 없다는 통찰을 했어야 했다. 북한 지배집단은 김정은 체제의 출범을 정상 국가로 탈바꿈할 기회로 삼았어야 했다. 핵폭탄을 껴안고 세계를 협박해 생존을 도모하기보다는, 핵을 버리고 세계의 지원 아래 살아남을 길을 찾아야 했다. 그것이 진보이고 순리이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국제사회가 ‘스위스 유학파’ 김정은에게 걸었던 일말의 기대는 무너지고 있다. 김정은을 앞세운 북한 지배집단은 변화를 두려워해 변화보다 더 위험한 수구(守舊)모험주의로 치닫고 있다. 스스로 체제 위기를 재촉하는 형국이다.
저들의 모험은 동시에 대한민국을 위험에 빠뜨린다. 저들은 도발 위기를 고조시키다가 잠깐 멈춰 대한민국이 느슨해지면 기습적으로 도발할 가능성이 높다. 천안함 폭침이 그랬다. 대한민국은 북이 잠시 숨을 고른다고 해서 본질의 변화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정부는 북한의 민주화와 자유민주체제로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국내 기반 조성, 북한 관리, 주변국과의 복합 외교를 성공시켜야 한다. 이것이 18대 대통령 정부의 핵심 시대정신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김일성 생일을 잊고도 살 수 있는 세상을 앞당겨야 한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