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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제리 입고 술시중 들면 풍기문란

입력 | 2013-04-17 03:00:00

■ 법원, 유흥업소 과징금 취소訴 패소판결
“통념상 성적흥분 유발하는 음란영업” 옛 공중위생법까지 참조해 결론 내려




서울 강남구 역삼동 대로변에 위치한 15층 높이의 라미르 호텔은 강남의 다른 특급호텔과 다른 점이 있다. 다른 호텔에는 전망이 좋은 층에 스위트룸 같은 객실이 있지만 라미르 호텔의 12층과 13층에는 유흥업소가 자리잡고 있다. 유흥업소 직원들은 인터넷 광고에서 ‘답답한 지하에 위치한 룸살롱들은 이제 뒤로하고 강남 전망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모시겠다’는 문구를 내걸고 손님을 끌어모았다.

2011년 1월 문을 연 이 유흥업소가 유명해진 것은 ‘높은 곳’에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이 유흥업소 접객원들은 룸에 들어와 손님이 보는 앞에서 상의와 브래지어를 벗고, 하의는 속옷만 입었다. 그 위에 란제리 슬립을 입고 손님과 함께 술을 마셨다. 속칭 ‘란제리 클럽’으로 불리는 이 업소는 전문직 남성과 대기업 간부들의 비즈니스 접대 장소로 금세 유명해졌다. 29개에 이르는 룸은 평일 주말을 가릴 것 없이 예약 손님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영업 시작 1년도 안 돼 경찰의 단속에 덜미를 잡혔다. 2011년 11월경 경찰이 들이닥쳐 여성 접객원 4명이 란제리 슬립만 입고 손님을 접대하는 현장을 적발했다. 단속 당시 성매매 현장은 적발되지 않았다. 경찰은 여종업원들의 영업 행태를 풍기문란 행위로 보고 식품위생법 위반죄로 업주 이모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 씨는 벌금 300만 원에 약식 기소됐다. 이후 이 씨는 정식 재판을 청구해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다.

형사 처벌과 별도로 이 씨는 관할 자치구인 강남구로부터 과징금 6000만 원을 부과 받았다. 업주로서 여성 접객원의 풍기문란 행위를 막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씨는 “일반 음식점과 유흥주점은 엄연히 다른 업종으로 신고해 영업한다. 란제리 슬립만 입고 술시중을 들게 한 건 식품위생법에서 허용한 접객 행위로 풍기문란 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반발하며 강남구를 상대로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식품위생법상 유흥주점에서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노래, 춤 등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우는 접대는 정상적인 영업으로 간주된다.

법원은 이 씨와 강남구 간의 행정소송에서 ‘풍기문란’의 기준에 대해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풍기문란은 ‘건전한 풍속과 사회도덕에 대한 기강을 문란케 하는 행위’를 뜻하고 있어 시간과 장소, 개인의 주관에 따라 평가가 천차만별일 수 있다. 결국 법원은 식품위생법뿐만 아니라 옛 공중위생법, 청소년보호법, 풍속영업 규제에 관한 법률 등을 비롯해 대법원 판례까지 참조해 결론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 조병구 판사는 “강남구의 과징금 처분은 적법하다”며 이 씨에게 패소 판결했다. 조 판사는 “손님 앞에서 옷을 벗는다든가, 팬티 위에 란제리 슬립만 입고 손님의 유흥을 돋우는 행위는 사회통념상 일반 성인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음란성 영업”이라며 “이 씨 업소의 접대 행위는 성에 관한 건전한 관념을 해치는 행위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불러 흥을 돋우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란제리만 입고 손님을 상대해서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이 유흥업소는 지난해 성매매 영업을 하다 경찰의 단속에 적발돼 한 차례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뒤 영업정지가 끝나 최근 영업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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