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건물 통념 깬 ‘한국 최대의 지하캠퍼스’
최준석 건축사사무소 NAAU 대표는 “ECC는 경계를 스스로 허무는 열린 공간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21세기 대학의 생존전략”이라며 “지하와 지상, 교정 밖과 안, 자연과 건축의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있다. 아울러 자본과 지성의 경계도 희미해진다”고 평가했다. 이화여대 제공
2000년 이후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학들은 교육 시스템의 변화에 대응하는 유연성과 캠퍼스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옛날 대학이 기품과 독자성을 지닌 여유로운 환경을 선호했다면 이제는 연구나 교육 외에도 상업시설 같은 다원적 기능까지 공존하는 캠퍼스를 원하게 됐다. 품위와 욕망, 교육과 이윤의 불편한 공존을 위해 이질적인 공간들이 필요해지자 캠퍼스 건축은 더욱 중요해졌다. 새로운 건축은 학교의 역사와 공간에 대한 기억이 쌓여 만들어진 정체성을 좀더 선명하고 대중적인 방식으로 되살려야만 했다.
기존 캠퍼스를 재해석하고 상업과 문화 기능을 추가해 구축해낸 이 결과물은 교묘한 건축인 동시에 거대한 조경이다. 이런 ‘풍경으로서의 건축’을 더이상 지배적인 스타일이 존재하지 않는 혼돈의 건축계가 찾아낸 새로운 개념으로 보기도 하고, 인테리어와 도시계획 사이에서 과거의 견고한 입지를 잃은 건축가들의 생존 전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실은 진정성이 없는 불필요한 건축 개념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사실 건축은 태생적으로 공공적이지 않다. 누군가의 요구와 열망의 발현일 뿐이다. ECC 건축주의 요구는 경쟁력 있는 넉넉한 공간을 가지는 것이었고, 열망은 학교에 선도적인 이미지를 입히는 것이었다. 이화여대는 당시 많은 대학이 공간 확보를 위해 그려낸 마스터플랜처럼 지하에 캠퍼스를 만든다는 원칙을 미리 세워둔 상태에서 국내 건축가를 완전히 배제한 채 학교의 의도를 가장 강한 이미지로 표현해낼 해외 스타 건축가들을 물색했다. 그 결과 완성된 선명하고 낯선 공간은 충격적이고도 대담하여 다수의 이목을 끎으로써 학교 측의 요구와 열망을 충족시켰다.
반면 공모전의 폐쇄성에 대한 비난도 나왔는데, 이는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건축의 양면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건축에 공공성의 짐을 지우는 이유는 그 결과를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건물과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도 그것을 볼 수밖에 없다.
ECC의 열린 공간에서 뛰노는 아이의 행복감, 친구와 나란히 걷거나 마주 앉기 좋은 정원과 계단에서의 설렘, 외벽 유리에 비친 나무와 하늘을 실제로 착각하여 부딪혀 죽은 새를 보는 황망함, 외국인이나 고등학생 관광객들의 낯섦, 이 모든 감정은 건물과 사람과 자연의 조합이 만든 예측 불가능한 감정의 화학작용이다. ECC처럼 낯설고 거대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자연과 건축이 여기저기 서로 얽혀 있는 건축물일수록 좋거나 싫은 감정들은 더욱 대립할 수밖에 없다.
김현진 SPLK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