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년 전이다. 둘째, 셋째 쌍둥이 딸을 산후조리원에서 데려 오기 위해 운전하고 가던 날의 설렘을 잊을 수 없다.
도착한 조리원 주차장에서 아내와 아기들의 짐 보따리를 트렁크와 조수석에 한가득 끼워 넣었다. 뒷자리에 장모님이 둘째를 안고, 그 옆에 집사람이 셋째를 안고 탔다. 그리고 조심스레 운전하면서 새로 태어난 쌍둥이 자매와 큰언니를 위해 필요한 육아용품 및 살림살이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오는 길. 아뿔싸! 중요한 사실이 떠올랐다.
그날은 첫딸을 본가 부모님에게 맡겨 놨지만, 이제 뒷자리에 아이 셋을 태워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보호 장구 없이 아이를 어른들 무릎 위에 앉혀 껴안고 탈 경우 급정차나 사고 시 얼마나 아이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지 TV와 홍보물에서 수도 없이 봤다. 우리나라도 2006년 도로교통법을 개정하면서 영유아가 차에 탈 경우, 반드시 카시트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더구나 앞자리 조수석에 12세 이하의 아이, 더구나 영유아용 카시트를 설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자동차 설명서에 빨간색 글자로 써 있었다. 결국 지금보다 더 큰 차로 바꿔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쌍둥이 자매들의 첫 번째 외출은 80일 앞으로 다가온 백일 기념사진 찍는 날. 사진관에 아이들을 데려가기 전에는 자동차를 구입하리라 맘을 먹었다.
일단 기존에 타던 차와 비슷한 1600cc급 중소형차는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2000cc급 중형차와 3000cc급 중대형차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발견하게 된 놀라운 사실. 소위 ‘세단’이라고 하는 차량들도 뒷자리 좌우 폭이 어른 엉덩이 크기 1.5배 정도 되는 카시트 3대를 동시 장착하기에는 턱없이 좁았다.
게다가 대부분의 2000∼3000cc급 세단들의 뒷자리 2열 시트 가운데는 카시트 장착에 꼭 필요한 3점식 안전벨트가 아닌, 2점식 안전벨트로 이루어져 있었다. 허리만 감싸는 안전벨트여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앉힐 수 없다. 즉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승용차는 카시트 3개를 장착해야 하는 다둥이 가족에겐 무용지물인 셈이다.
그래서 SUV 차량들 중에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요즘 대부분의 SUV도 5인승으로 일반 승용차와 마찬가지로 공간도 좁고, 안전벨트 형태도 적당하지 않았다. 결국 다섯 가족이 모두 탈 수 있는 유일한 차는 3열 시트가 있는 대형 SUV 차종뿐이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3000cc급 대형 SUV들은 대중적이라기보다는 고가의 럭셔리 브랜드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에게 별로 필요치 않은 옵션이 많이 달려 있었다.
예를 들어 개개인마다 DVD가 시청 가능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가죽 시트가 필수인 경우가 많아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어떤 아이는 카시트에 태우고 어떤 아이는 태우지 않을 수도 없는 일. 국가에서 7인승 SUV 구입 시 다둥이 가족은 취득세, 등록세를 면해 준 덕택에 조금은 위안을 받았지만, 결국 할 수 없이 이 차를 살 수밖에 없었다. 가족 지향적이지 않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현실에 대한 아쉬움만 가득 남기고 말이다.
사실 자동차 업계에 대한 아쉬움은 우리 같은 다둥이 가족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 차량을 구입할 때 고려하는 중요 사항 중 하나가 카시트 장착을 위해 꼭 필요한 3점식 안전벨트, 어린이용 카시트 안전고정장치(ISOFIX) 지원 여부, 그리고 뒷자리 사이드 에어백이다. 조수석에 아이를 태울 경우 사고 시 에어백이 터지면 오히려 질식사가 되기 때문에 조수석의 에어백 기능을 일시적으로 꺼 놓을 수 있는 ‘에어백 턴오프’ 기능도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산차에는 이런 장치들이 없다. 있다 하더라도 영유아를 둔 젊은 가족이 구입하기는 다소 부담스러운 고가 차종에 국한되어 있다.
아직까지 가족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대한민국에서 다둥이 가족을 위한 차 한 대 구입하는 것도 그리 만만치 않다.
이경석 광고기획자
※ 30대 중반의 광고기획자인 필자는 여섯 살 큰딸 보미와 세 살 유나·지우 쌍둥이를 키우는 가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