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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LG그룹 창업자 연암 구인회

입력 | 2013-04-18 03:00:00

“고생 안하고 얻는 보물이 어데 있는기요?”




“남이 안 하는 것을 하라. 뒤따라가지 말고 앞서가라. 새로운 것을 만들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치열하게 경쟁 중이고 삼성전자의 최근 실적이 워낙 좋아 혼동하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전자산업을 가장 처음 시작한 것은 연암(蓮庵) 구인회(1907∼1969·사진) LG그룹 창업자였다.

1957년 초 락희화학 경영진 사이에서는 하이파이 전축의 매력에 푹 빠진 윤욱현 기획실장의 취미생활이 화제에 올랐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연암이 윤 실장에게 물었다. “하이파이 전축이라는 게 그렇게 재미있는 기요?” 윤 실장은 “사장님도 한번 빠져 보십시오. 우리나라도 그 정도 제품은 만들어야 하는데…”라고 답했다. 단순한 잡담이었지만 연암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우리가 그거 만들면 안 되는 기요?” 기술 수준이 낮아서 안 된다는 답에 연암은 “그렇다면 문제없구먼. 기술이 없으면 외국 가서 기술 배워 오고, 그래도 안 되면 외국 기술자 초빙하면 될 것 아니오. 한번 검토해 봅시다.” 당시 석유화학공업과 전자공업이 유망한 분야로 꼽히고 있었다. 하지만 전자산업은 한국에서 아직 아무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 점이 오히려 연암의 사업가적인 마인드를 더욱 자극했다.

이듬해인 1958년 10월 1일 국내 최초의 전자업체인 금성사가 탄생했다(삼성전자의 모태인 삼성전자공업은 이로부터 11년 뒤인 1969년 설립됐다). 금성사는 전축 같은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필요한 제품 대신 우선 라디오를 1959년에 내놓았고 선풍기와 전화기 등으로 생산품목을 늘려나갔다. 이후 흑백 TV, 세탁기, 냉장고 등을 만들며 금성사는 국내 전자산업의 다양한 분야에서 ‘최초’라는 이름을 써 내려갔다. 연암이 세운 락희화학에서 화장품 크림이나 플라스틱 등 국내 최초 제품을 많이 내놓은 것처럼 금성사도 그러한 전통을 이어간 것이다.

연암은 이처럼 사업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다. 특히 사업 기회를 포착하는 데 있어서는 남이 흉내 내기 어려울 만큼 날렵하고 과감했다. 사업 초창기 연암이 경남 진주에서 포목점 ‘구인회 상회’를 열고 장사를 하고 있을 때다. 사업은 잘됐지만 1936년 7월 남강이 범람하는 홍수가 나는 바람에 연암은 모든 것을 잃고 만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 연암은 ‘장마 진 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말을 떠올렸다. 풍년이 들면 농가의 소득이 늘고, 소득이 늘면 농민들은 자식들 혼인시키기 바쁠 것이다. 비단과 광목이 잘 팔릴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홍수로 옷과 침구를 잃은 사람들의 수요도 추가로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연암은 신뢰를 쌓아놓은 지인을 찾아가 돈을 빌리고 정신없이 바쁘게 뛰어다니며 가을의 호황을 준비했다. 연암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호황을 예상하지 못한 다른 가게들은 손님으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구인회 상점의 북새통을 지켜만 봐야 했다.

김선우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연세대 설립자인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의 증손자이자 컨설턴트인 피터 언더우드는 그의 책 ‘퍼스트무버’에서 “퍼스트무버(선발주자)의 핵심은 창의성인데 창의성은 도전정신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했다. 연암의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은 창의적 사업기회 확보의 기초가 됐다. 연암은 강한 도전정신 덕분에 일상 대화에서 사업 기회를 포착하고 물에 잠긴 포목을 보며 몇 개월 뒤의 경기 활성화를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어느 산업에서건 선발자는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도 크다. 이에 따라 선발자가 닦아놓은 시장에 재빨리 추격자로 뛰어들어 적은 위험으로 큰 이득을 보는 ‘후발자의 이익(Late mover advantage)’을 누리는 기업도 많다. 같은 이치로 연암이 먼저 밀고 나간 사업에서 항상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라디오를 처음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을 때 잘 팔리지 않자 “이럴 바엔 차라리 돈을 은행에 맡겨 놓고 다달이 이자나 챙기는 게 더 이익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연암은 이마저 특유의 리더십으로 넘어섰다.

“무슨 일에나 시련은 있기 마련이오. 매화는 모진 추위를 겪어야 비로소 향기를 뿜는다(梅經寒苦發淸香)는 교훈처럼 고생 안 하고 얻어지는 보물이 어데 있는기요. 금성사가 지금 불황에 빠져있다는 것은 내가 더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망할 지경은 아니니 걱정들 마소. 지금 우리는 전자공업이라는 길 없는 밀림 속을 헤쳐 나가는 개척자인 기라. 가까운 시일 언젠가는 고생한 만큼 보람도 얻게 될 테니 그때까지 모두들 마음을 합치고 힘을 모아 일해주소.”

50여 년 전 연암의 이 말에서 LG전자의 현재가 떠오르는 건 필자뿐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선우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sublime@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경영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27호(2013년 4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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