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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로거 작은 다툼에 주부 온라인 편싸움, 왜?

입력 | 2013-04-18 03:00:00

하루 방문자 6만명… 게시물에 열광
명품 호화생활 지켜보며 대리만족
두 블로거 감정싸움에 가세해 비난전




화려한 결혼생활을 블로그에 올리며 누리꾼들로부터 인기를 얻은 두 여성 파워블로거 A 씨와 B 씨 간에 최근 싸움이 붙었다. 등록된 독자만 수만 명에 달하는 이들은 오프라인에서 서로 감정이 상하자 블로그에서 비난전을 이어갔다. 그러자 두 블로그의 독자들은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블로거를 옹호하며 상대편 블로그에 비난 글을 쏟아냈다.

청소년도 아닌 기혼여성들이 파워블로거 다툼에 끼어들어 ‘온라인 전쟁’을 벌이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주부들이 블로그를 통해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주목하고 있다.

파워블로거 두 명의 다툼은 와인 한 잔을 계기로 불거졌다. B 씨가 블로그에 올린 글에 따르면 두 사람은 최근 사교 차원에서 직접 만났다. A 씨는 고가의 와인 ‘로마네콩티’를 가져와 한 잔을 따라놓은 뒤 “귀한 것이니 향을 맡고 입술을 축이는 정도로만 음미하자”고 했다. 하지만 취한 B 씨는 ‘원 샷’으로 한 번에 마셔버렸다. 그러자 A 씨는 “이게 얼마나 비싼 와인인데 벌컥 마시느냐”고 핀잔을 줬다. 이 와인은 한 병 값이 수백만 원에서 1000만 원대에 이른다.

오프라인에서의 다툼이 그 후 블로그상으로 이어졌고 결국 B 씨는 15일 A 씨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들을 공개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A 씨는 “당분간 블로그를 접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10만 명이 B 씨의 블로그를 방문했고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B 씨를 위로하고, A 씨를 향해 “실망했다. 실체가 드러났다”고 비난하는 내용이 많았다.

A 씨와 B 씨의 공통점은 블로그에 신혼생활, 명품, 여행 등 정보를 올리는 주부 파워블로거라는 점이다. 주부들이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문화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와이프’와 ‘블로거’를 합성한 ‘와이프로거’라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특히 A 씨는 빼어난 미모와 호화로운 생활 등이 알려지면서 인기를 얻었다. 블로그를 구독하는 독자는 2만 명이 넘는다. B 씨 역시 하루 방문자가 17일 기준 6만 명이 넘는 인기 블로거다.

‘럭셔리 와이프로거’들의 게시물을 구독하는 주부들은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말한다. 3세 아들을 키우는 김모 씨(27)는 “육아, 가사에 관한 정보를 얻으면서 내가 경험하기 힘든 호화생활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느낄 때가 있다”고 말했다. 결혼 2년차 주부인 강모 씨(31)는 “부러움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예쁜 가정을 꾸려야겠다’는 자극을 받게 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블로거들이 지나치게 호화로운 모습들을 게시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럭셔리 블로거가 1000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액세서리를 구매한 뒤 올린 후기에는 “어떻게 하면 ○○님처럼 살 수 있나요? 부럽네요” “나는 언제쯤 손목에 차볼까…” 등의 댓글이 달렸다. 주부 김모 씨(39)는 “명품을 가지는 게 성공한 주부의 조건인 것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말했다. 채널A ‘웰컴투 시월드’에 출연하는 방송인 전원주 씨는 “젊은 여성일수록 허영을 버리고 내실을 키우는 결혼생활을 목표로 둬야 하는데 화려함만 좇는 세태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신세대 주부들의 소통 방식’으로 해석한다. 김재휘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금 블로그를 운영하는 젊은 주부들은 10, 20대 때 뉴미디어를 접한 세대”라며 “블로그로 소통하는 것에 익숙한 여성들이 기혼자가 되면서 와이프로거가 등장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집안일과 개인적인 공간에 매여 있던 주부들이 이러한 블로그에 참여해 공감하고 관계를 맺어가며 사회적 소속감과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연·곽도영 기자 s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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