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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이수]보스턴희생자 명복을 빌며

입력 | 2013-04-18 03:00:00


김이수 헌법재판소 재판관

보스턴은 인구가 60만, 광역까지 합해야 300만 명이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서 미국 최초의 대학인 하버드를 비롯해 최초의 지하철, 가장 오래된 야구장, 최초의 마라톤 대회 등 미국 최초로 불리는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 대학만 해도 매사추세츠공대(MIT)를 포함해 100개가 넘는다.

보스턴에서는 매년 4월 세 번째 월요일에 세계적으로 가장 전통 있는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그런데 이달 15일에 열린 제117회 대회는 폭탄과 피, 아비규환으로 뒤섞였다. 가장 비정치적이고 평화적이어야 할 세계인의 마라톤 축제가 공포의 도가니로 변하고 말았다. 지구촌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보스턴 마라톤은 보스턴 시민 전체의 축제이다. 2만 명이 넘는 마라토너들이 뛰는 연도에는 수십만의 시민이 나와 환호하며 마라토너들을 격려하고 ‘애국자의 날’ 휴일을 즐긴다.

보스턴은 마라토너들의 성지(聖地)이다. 마라토너라면 누구나 이 대회에서 달리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축제 분위기에서 치러지며, 수준이 있는 기록 보유자만이 참가할 수 있고, 보스턴 글로브지에 완주한 사람들의 명단과 기록이 실리는 대회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2011년 4월 18일 열린 제115회 대회에 아내와 함께 출전한 바 있다. 당시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한 기록 요건은 50대 후반 남자의 경우 3시간45분59초였다. 올해부터는 대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하여 출전 기준 기록이 더욱 엄격해져 3시간40분으로 단축되었다.

보스턴 교외 홉킨턴에서 시작하는 보스턴 마라톤은 휠체어마라톤, 엘리트여자, 엘리트남자 1∼3그룹 순으로 나뉘어 시간차를 두고 출발한다. 그 움직임이 마치 물결이 움직이는 것 같아 ‘웨이브(wave)’라고 부른다.

연도에는 보스턴 주민들이 거의 다 나와 응원을 한다. 테이블과 의자까지 차려놓고 커피를 마시면서 즐기는 가족들도 있고, 급수대가 아닌 곳에서 스포츠음료나 물을 컵에 담아 건네는 어린아이들도 있다. 땀 닦으라며 물에 적신 티슈를 건네주는 아주머니도 있다.

웨슬리여대가 있는 20km 지점이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일명 ‘kiss me 구간’이다. 이 구간은 양쪽에 펜스를 설치해 놓았지만 웨슬리여대생들은 주자에게 달려들어 열광적인 행동을 한다. 옷에 ‘kiss me’ 등의 문구를 적어 넣거나 ‘make a scandal’ 등의 팻말을 들고 열렬하게 응원하는 것이다.

32km 지점 부근에는 ‘상심의 언덕(heartbreak hill)’이 있다. 줄곧 선두로 달리던 엘리트선수가 이 언덕에서 추월당하여 상심하고 있는 모습이 신문에 실리자 사람들이 이 언덕을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심장파열의 언덕’이라고 잘못 부르기도 한다. 언덕을 넘어서면 보스턴칼리지 학생들이 모두 쏟아져 나와 함성과 하이파이브로 극성스러운 응원을 한다. 요즘 자목련 꽃이 만발해 있을 보스턴의 풍경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말처럼 범인을 반드시 찾아내 정의의 무게를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 재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