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중앙銀 한국 주식 사들여… 금융시장 ‘윔블던 현상’ 우려
각국 중앙은행의 주 타깃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타격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한국 등 아시아 신흥국의 주식시장이다. 해외 중앙은행들의 자금유입이 늘어남에 따라 한국 주식, 외환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영향력이 커져 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윔블던 현상’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 수익률 비상에 주식 사들이는 중앙은행들
주식투자 확대에 나선 중앙은행은 이들만이 아니다. 최근 영국의 중앙은행 전문 조사기관인 센트럴뱅킹퍼블리케이션이 세계 60개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30%의 중앙은행이 “앞으로 주식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라고 답했다.
한국은행도 주식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2007년 1.3%에 불과했던 한은의 외환보유액 중 주식투자 비율은 지난해 5.7%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에 한은은 중국 정부로부터 적격외국인기관투자자 자격을 얻어 중국 주식시장에 3억 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액을 이용해 주식투자에 나서는 것은 보유액은 커지는데 주 투자대상이던 선진국들의 채권수익률이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말 세계 중앙은행의 총 외환보유액은 10조9000억 달러(약 1경2000조 원)로 2007년 6조3000억 달러보다 4조 달러 이상 늘었다. 선진국의 양적완화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국 화폐 가치가 상승한 국가들이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달러 및 유로화를 사들였기 때문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늘어난 외환보유액을 주로 선진국 채권으로 바꿔 보유하고 있었으나 선진국 채권의 수익률이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하락하면서 기존 투자방식으로는 막대한 보유액을 운용하는 비용도 제대로 뽑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
○ 한국 투자 확대에 ‘윔블던’ 현상 우려도
중앙은행들의 주식투자가 집중되는 곳은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고, 통화가치도 함께 높아진 나라들이다. 주식투자 수익에 환차익까지 노리기 위해서다.
한국 주식시장 역시 주식투자를 확대하려는 중앙은행들의 주요 투자처다. 지난해 노르웨이 중앙은행으로부터 외환보유액 운용을 위탁받은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사들인 한국 주식은 1조 원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동의 국부펀드들이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한 자금도 30조 원에 육박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지난해 중동 국부펀드를 중심으로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 유럽 국가들의 한국 주식투자가 크게 늘었다”면서 “지난해 지속됐던 환율 하락세(원화 가치는 상승)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증시전문가들은 외국 중앙은행들의 국내 주식시장 투자 확대로 주가가 오를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우려 또한 적지 않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북한 리스크 등 대내외 요인에 따라 주식시장은 물론이고 환율까지 크게 출렁이는 ‘윔블던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최근 외국인 자금은 북한의 도발위협과 엔화 약세 현상이 겹치자 지난달부터 빠르게 국내 주식시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 윔블던 현상 ::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주가 상승의 과실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만 돌아가는 등 국부 유출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영국에서 열리는 윔블던테니스대회에서 외국인 선수들이 활약하면서 개최국인 영국 선수가 우승하지 못하는 상황을 빗댄 용어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