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존 등교시간 車 40%가 제한속도 무시
○ 목포의 초등학교, 어린이 사고 1위 오명
김 군은 횡단보도 옆에 불법주차된 1.5t 트럭 앞에 섰다. 고개를 내밀고 차가 오는지 슬쩍 보고는 횡단보도 위를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그때 맞은편에서 택시 한 대가 시속 60km 가까운 속도로 달려왔다. 보는 사람도 아찔했다. 놀란 김 군은 길을 건너다 말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김 군은 “며칠 전에도 친구들과 길을 건너다 차에 부딪힐 뻔했는데 잘 피해서 안 다쳤다”고 웃으며 말했다.
하교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나온 한 여성은 “얼마 전 학부모 모임에서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불안한 마음에 아이를 직접 데리러 온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도로교통공단으로부터 스쿨존 사고 데이터를 입수한 뒤 사고 지점의 경위도 좌표를 지도에 표시하는 지리정보시스템(GIS) 기법을 사용해 2009∼2011년 3년간 사고가 3건 이상 발생한 ‘사고다발 스쿨존 상위 102곳’을 추려냈다.
이 102곳은 같은 기간 전국 스쿨존 1곳당 평균 사고건수(0.16건)보다 18∼50배나 사고가 잦은 ‘악마의 스쿨존’이다. 피해 어린이가 차량 탑승자인 경우는 제외하고 어린이 보행자 사고만 포함시켰다. 학교 두 곳이 붙어 있어 통합 스쿨존으로 관리되는 곳은 사고건수를 합산했다.
분석 결과 서해-연산초교에서 사고 8건이 발생해 전국 사고 건수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로 경남 밀양시 밀성초교(6건)와 경기 평택시 비전동 성동초교(5건)가 오명의 순서를 이었다.
한국교통연구원·한국도로공사·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tbs 교통방송
○ 사고 잦은 스쿨존의 네 가지 공통점
본보 취재팀은 서해-연산초교는 물론이고 서울 동작구 은로-중대부속초교(5건), 용산구 청파초교(4건), 인천 옥련-능허대초교(5건) 등 사고가 많았던 학교 앞 네 곳을 허억 안전생활시민실천연합 사무처장과 함께 찾아가 주변 차량들의 운전 행태와 시설의 적합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이들 사고 다발 학교 앞은 거의 공통적으로 △불법 주정차 △허술한 과속방지턱 △과속단속 카메라 부재 △인도 없는 학교 앞 도로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①불법 주정차=학교 주변 불법 주정차 차량은 운전자의 시야에서 체구가 작은 어린이를 가린다. 서해초교 주변 곳곳엔 불법 주정차 금지 안내판을 무시하고 세워둔 차량이 가득했다. 이곳에서 불법 주정차 차량 탓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어린이가 차량에 치인 사고는 2009∼2011년에 3건 일어났다. 2011년 중상 사고가 일어났던 서해초교 스쿨존 내 원산동주민센터 앞 도로는 여전히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빼곡했다. 어린이들이 차량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걸어 다녔지만 주정차 단속은 없었다.
1일 오후 2시 인천 옥련-능허대초교 주변도 사정은 비슷했다. 아이들은 길가에 세워진 차량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차가 오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제한된 시야 탓인지 오는 차가 없는 줄 알고 한 발짝 내디뎠다가 갑자기 나타난 차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인도로 뛰어 올라오는 아이들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킥보드를 탄 일부 어린이는 인도를 막아선 불법 주정차 차량들을 피해 차도 위로 나섰다가 갑자기 출발하는 차량 때문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경사가 심한 탓에 평소엔 불법 주정차한 차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은로초교 앞에도 하교 시간이 되자 정차된 차량이 길게 줄을 섰다. 아이들을 학원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몰려든 통학차량과 학부모들의 승용차이다. 인도까지 침범한 차량도 있었다. 아이들은 정문 앞을 어지럽게 점령한 차들을 피해 횡단보도를 건넜다. 자신의 자녀를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하교시키기 위해 승용차를 몰고 온 부모들이 전체적인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은로초교에 재학 중인 박모 양(10)은 “엄마 아빠가 모두 회사에 다녀 혼자 집에 가야 하는데 친구 부모님 차들 때문에 도로에 차가 오는지 잘 안보여 겁이 난다”고 했다.
②허술한 과속방지턱=서울 은로-중대부속초교 앞은 과속 차량이 많기로 유명하다. 언덕길 경사가 5∼25도로 가파른데 차량의 내리막길 질주를 막을 과속방지턱은 부족하다. 페인트만 칠해 둔 ‘허탕’을 빼면 시설기준에 맞는 과속방지턱이 700m 구간에 두 개뿐이다. 이마저도 차들이 정작 속도를 줄여야 하는 횡단보도에서 4∼6m 멀리 떨어져 있어 속도를 잠깐 줄였다가 다시 높이면 그만이었다.
2일 오전 7시 반 등교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스피드건으로 통행 차량의 속도를 측정했다.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노인 자원봉사자들이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10대 중 4대꼴로 스쿨존 제한속도인 시속 30km를 넘겼다. 내리막길을 시속 62km로 내달리는 1t 트럭도 있었다. 실제 2009∼2011년 이곳에서 어린이 교통사고가 5건 발생해 3명이 중상을 입었다. 전부 길을 건너는 아이를 보고도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해 일어난 사고다.
인천 옥련-능허대초교 주변엔 20∼25m 간격으로 과속방지턱이 설치돼 있었지만 운전자들은 방지턱 직전에만 속도를 줄였다가 방지턱을 넘은 뒤엔 가속페달을 밟는 행태를 반복했다. 이 같은 운전습관은 속도를 높이는 와중에 차도에 갑자기 어린이가 나타나면 오히려 큰 부상을 입힐 수 있어 위험하다.
③차로와 뒤섞인 인도=청파초교 스쿨존에선 인도를 찾기가 어렵다. 초등학교 둘레길인 ‘청파새싹길’ 구간 639m 중 426m(66.7%)엔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다. 특히 어린이들이 등하교시간마다 쏟아져 나오는 정문 앞에도 10m가량 보도가 끊겨 있다. 내리막길을 쌩쌩 달리는 차량과 어린이가 뒤섞이는 위험한 장면이 연출될 수밖에 없다. 2일 오후 하교시간엔 스쿨존 곳곳에서 차도 위를 걷는 초등학생들에게 차량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리며 비키라고 손짓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2009∼2011년 발생한 4건의 사고도 차도를 걷던 어린이가 차량에 발을 밟히는 등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발생했다. 허억 사무처장은 “학교 담장을 안쪽으로 밀거나 정문 앞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바꿔서라도 아이들의 보행로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④무용지물 단속 카메라=곳곳에 제한속도 표지판과 노면 표시가 있지만 과속 단속 카메라가 없으니 무용지물이다. 은로초교 맞은편엔 차량의 속도를 자동 감지해 숫자로 표시해주고 제한속도를 넘긴 차량을 향해 경보음을 울리는 ‘속도 감지 표시장치’가 설치돼 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전국 스쿨존에 설치된 무인 단속 카메라는 총 73대로 전체 스쿨존의 0.5%에 불과하다. 학교 주변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두긴 했지만 방범용이다. 정부는 스쿨존 내 사고를 줄인다며 과속 등 위반행위에 대한 범칙금을 일반 도로에서 적발됐을 때의 두 배 수준으로 올렸지만 경찰이 항상 지키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실효성이 별로 없다.
장선희·조건희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