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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재즈피아니스트 프레드 허시 “커밍아웃이 내 예술 끌어올렸다”

입력 | 2013-04-19 03:00:00

21일 내한공연 美 재즈피아니스트 프레드 허시 e메일 인터뷰




미국 재즈 피아니스트 프레드 허시의 가녀린 외모로 그의 광폭 행보를 짐작하기는 힘들다. 허시는 “트럼페티스트, 기타리스트와의 협연 앨범을 6월과 8월에 낸다. 한국에서 여러분을 만나길 기대한다”고 했다. 플러스히치 제공

《 미국 재즈 피아니스트 프레드 허시(58)는 재즈계에서 특별한 존재다. 현존 최고의 재즈 피아노 연주자 중 하나로 꼽히는 그는 매번 마지막이란 마음으로 무대에 오른다. 연주자로 물이 올랐던 31세(1986년)에 에이즈 진단을 받았다. 멈추지 않았다. 매년 한두 장의 앨범을 내고 매주 무대에 올랐다. 2008년 병세가 악화돼 두 달간 혼수상태에 빠졌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그때 꾼 꿈을 음악과 멀티미디어로 재현해 ‘내 혼수상태의 꿈(My Coma Dreams)’을 만들었다. 19세기 시인 월트 휘트먼의 시집도 음악으로 재해석했다. 에이즈 퇴치를 위한 자선활동에도 앞장섰다. 그의 연주는 역설적으로 여유와 창의성,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1993년에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재즈계에서 이례적인 일이었다. 브래드 멜다우, 이던 아이버슨 같은 세계적인 재즈 피아니스트도 길러냈다. 2011년 뉴욕의 재즈 성지인 클럽 ‘빌리지 뱅가드’는 75년 역사상 최초로 단일 연주자에게 일주일간의 피아노 독주 무대를 내줬다. 이를 녹음한 앨범(‘얼론 앳 더 뱅가드’)으로 허시는 2012년 그래미 ‘최우수 재즈 연주 앨범’과 ‘최우수 재즈 즉흥 솔로’ 부문 후보에 올랐다. 》

21일 오후 5시 서울 마포구 대흥동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열리는 첫 내한공연(3만∼7만 원·문의 02-941-1150)을 앞두고 일본 도쿄에 있는 허시가 동아일보와 먼저 e메일로 만났다. 그는 “매일 30개가 넘는 알약을 먹어야 하지만 지금 창작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한국과 인연이 있는지.

“첫 방문이라 기대가 크다. 음악학교에 다니던 스무 살 때(1975년) 윤이상의 곡을 연주해 본 적이 있다. 한국인 제자도 여럿 가르쳐봤다.”

―첫 내한공연을 솔로 피아노 연주로 꾸민다. 3인조, 4인조, 8인조, 11인조 같은 다양한 편성으로 연주해온 당신에게 피아노 독주의 매력은 뭘까?

“원하는 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다. 왼손을 광범위하게 쓰며 아주 넓은 범위의 강약(强弱)으로 연주할 수 있다. 피아노는 오케스트라가 되고, 노래하는 가수가 되며, 다양한 음조를 표현하는 큰 북이 될 수도 있다.”

―병세는 좀 어떤지…. 죽음의 고비를 넘긴 것이 당신의 음악과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매일 30개 넘는 알약을 먹고 있긴 하지만 건강은 매우 좋다. 누구든 죽음과 마주하면 바뀔 수밖에 없다. 1986년 진단부터 1993년 새로운 약이 나오기까지는 아주 어두운 시기였다. 희망은 거의 없었다. 친구들이 같은 병으로 죽는 걸 지켜봤다. 하지만 지금 난 창작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기적과도 같다. 감사한 일이다.”

―커밍아웃을 한 뒤 활동에 어려움은 없었나?

“자신의 예술성을 최대로 끌어올리려면 먼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벽장 안에 숨어있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른 많은 동성애, 에이즈 감염 아티스트들이 어깨에서 짐을 내려놓도록 하는 데 내가 도움을 준 듯해 뿌듯하다.”

―한국에서 어떤 무대를 꾸밀 작정인가.

“내 곡과 웨인 쇼터, 빌리 스트레이혼, 셀로니어스 몽크의 명곡, 브라질과 미국의 스탠더드 곡을 연주하게 될 거다.”

―앞으로의 계획은?

“가능한 한 많이 연주하기. 가능한 한 많은 창작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다양한 장르에서 작곡 활동 계속하기.”

―음악가로서, 인간으로서 인생의 꿈은 무엇인가.

“매일 좋은 하루를 보내는 거다! 그리고 보다 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