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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의 詩로 여는 주말]‘두꺼비’

입력 | 2013-04-20 03:00:00


‘두꺼비’
박성우(1971∼ )

아버지는 두 마리의 두꺼비를 키우셨다

해가 말끔하게 떨어진 후에야 퇴근하셨던 아버지는 두꺼비부터 씻겨 주고 늦은 식사를 했다 동물 애호가도 아닌 아버지가 녀석에게만 관심을 갖는 것 같아 나는 녀석을 시샘했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녀석을 껴안고 주무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살짝 만져 보았다 그런데 녀석이 독을 뿜어내는 통에 내 양 눈이 한동안 충혈되어야 했다 아버지, 저는 두꺼비가 싫어요

아버지는 이윽고 식구들에게 두꺼비를 보여주는 것조차 꺼리셨다 칠순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날이 새기 전에 막일판으로 나가셨는데 그때마다 잠들어 있던 녀석을 깨워 자전거 손잡이에 올려놓고 페달을 밟았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아버지는 지난 겨울, 두꺼비집을 지으셨다 두꺼비와 아버지는 그 집에서 긴 겨울잠에 들어갔다 봄이 지났으나 잔디만 깨어났다

내 아버지 양 손엔 우툴두툴한 두꺼비가 살았었다
    
    



화가 황재형 씨의 ‘아버지의 자리’.

가슴이 먹먹하다. 두꺼비의 정체는 고단했던 삶의 흔적을 담은, 아버지의 울퉁불퉁하고 거친 손이었다. 시인은 긴 겨울잠에 들어 봄이 와도 깨어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가식 없는 언어에 짙은 여운으로 남긴다.

마음이 울컥해진다. 그제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마주친 화가 황재형 씨의 ‘아버지의 자리’. 골 깊은 주름과 그렁그렁 물이 차오른 소 같은 눈. 그 울음 한번 터지면 주름의 강물을 채우고도 넘쳐흐를 듯, 노새처럼 살아온 어느 늙은 아버지의 생애가 거기 있다.

코끝이 찡해진다. 시인 원재훈의 첫 장편 ‘망치-아버지를 위한 레퀴엠’의 책장을 덮으면. 6·25전쟁 참전용사로 훈장처럼 일곱 개의 쇠막대를 다리에 품고 살았던 아버지의 생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한다. 소설의 실마리를 준 아버지를 떠나보낸 기억을 작가는 서문에서 들려준다. ‘몸이 더이상 뜨겁지도 않은 불구덩이에 들어가 두어 시간이 지나자 팔십 인생은 쇠막대만 남기고 더이상 태울 것도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사라진 자리에서 아버지를 보았다. 저 무거운 걸 몸에 지니고 살아온 사람. 그 휘어진 등에 업혀 있는 우리 가족의 모습.’

이 한 주에 접한 소설과 그림 위로 박성우 시인의 작품이 겹친다. 시나 소설이나 그림이나 연로한 아버지들의 열전은 제각기 다른 듯 어딘지 닮아있다. 힘겹고 고달픈 평생의 배역을 마치고 무대 밖으로 퇴장하기 시작한 윗세대 아버지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성년을 훌쩍 넘긴 자식의 마음자락에 아련히 스며든다.

올해 우리 사회에선 부성애(父性愛)가 새로운 화두가 된 것일까.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7번방의 선물’과 시청자들을 울린 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 이어 신세대 아빠와 자녀의 여행을 소재로 한 ‘아빠! 어디가?’란 예능 프로그램까지 대중의 눈을 끌고 있다.

권력과 권위는 거세된 채 의무와 희생만 떠안은 한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다는 표정들이 그런저런 화면을 채우고 있다. 나 외롭고 힘들다고 투덜대느라 불우이웃돕기 운동보다 등한시했던 것이 아버지의 인권이었나. 그래도 아버지란 말의 무게와 씨름하며 한 주를 잘 버틴 이들에게 꽃피는 봄날이 작은 위로가 되어주길….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