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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뒷談]부안 방폐장 사태 10년… 거부한 부안-유치한 경주 지금은

입력 | 2013-04-20 03:00:00

부안 “그 얘기 그만” 조심조심… 경주 “완벽히 짓자” 조심조심




《 2003년 7월, 방폐장(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나라를 뒤흔들었다. 당시 김종규 전북 부안군수가 위도에 방폐장 유치를 선언하면서 촉발된 ‘부안 방폐장 사태’는 1년 이상 지속되면서 엄청난 상처를 남겼다. 군수가 주민들에게 감금돼 폭행당했으며 주민 160여 명이 사법처리됐다. 부상자도 500명을 넘었다. 부안사태가 주민투표에서 91.8%가 반대해 일단락된 뒤 정부는 공모 방식으로 전략을 바꿨다. 2005년 경북 경주 포항 영덕, 전북 군산시가 유치를 신청했고 주민투표를 통해 경주시가 찬성 89.5%로 후보지로 선정됐다. 정부가 방폐장 용지를 물색한 지 19년 만이었다.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은 2007년 11월 경주시 양북면에서 방폐장 공사에 들어갔다. 공사 지점의 지반이 약한 돌발 변수가 생기면서 공사 기간이 늘어나 내년 6월 완공될 예정이다. 경주시는 방폐장 유치에 따른 지원책인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과 양성자가속기 설치, 특별지원금을 바탕으로 과학 기반이 어우러진 역사문화관광도시를 추진하고 있다. 부안과 경주의 10년 전후를 살펴봤다. 》




2003년 7월 25일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 건설되는 것을 반대하는 전북 부안군민 등 6000여 명이 부안군 수협 앞 집회에서 ‘핵 폐기장 건설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동아일보DB

▼ 부안, 아직도 후유증 ▼

“아이고 10년이나 지나 이제 잊을 만헌디(한데) 어쩌자고 그 얘기를 또 꺼내시오.”

“먹고살기도 바쁜디(바쁜데) 그놈의 방폐장 얘기를 다시 해서 뭐에 쓸라고 그러시요.”

17일 전북 부안 어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방폐장(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얘기를 꺼내자 한결같이 손사래를 치거나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2003년 준(準)전시 상태, 엄청난 사회적 비용

2003년 당시 김종규 부안군수가 정부의 장기미제 국책사업이던 방폐장을 ‘지역발전을 위해’ 부안군 위도에 유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촉발된 소위 ‘부안사태’는 생거부안(生居扶安·조선시대 암행어사인 박문수가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 부안을 지칭한 말)으로 불리던 조용한 농어촌 부안을 1년여 동안 태풍의 눈 한가운데로 밀어넣었다. 주민 45명이 구속되고 121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경찰과 주민 500여 명이 중경상을 입어 병원마다 환자가 넘쳐났다. 인구 6만여 명인 부안에 경찰이 1만여 명 가까이 상주할 만큼 준전시 상태였다. 그해 말 부안에 투입된 전·의경의 식비 등으로 사용한 전북경찰의 예비비가 100억 원에 육박한다는 자료가 나오기도 했다.

사회적 비용도 컸다. 부안군청의 한 공무원은 “부안사태 이후 주민들의 공무원에 대한 불신이 더욱 심해졌고 집단민원이 발생해도 토론 자체가 안 된다”며 “군 의회나 지역원로들도 오해를 받을까 봐 중재에 나서려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찬반 주민들의 주장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반대 측 주민들은 최근 격포항을 중심으로 부분적으로나마 살아나는 관광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예로 들며 ‘안 하길 잘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찬성 측 주민들은 방폐장을 유치했더라면 인센티브를 받아 지금보다는 지역이 발전됐을 거라고 주장했다. 반대 측에 섰던 김선곤 전 군의원(64)은 “잊혀질 만하면 선거 바람이 불면서 다시 ‘네 편 내 편’이 갈리고 가라앉은 상처가 되살아나곤 한다. 하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찬성 측의 기세가 많이 꺾였다”고 말했다. 반면 이영택 씨(74)는 “환경단체와 외부세력의 개입 때문에 좌절됐다”며 “경주로 가게 된 것도 ‘부안 주민끼리 싸움’의 결과로 방폐장의 안전성이 어느 정도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3년 9월 8일 부안 내소사에서 반대 주민들에게 붙잡혀 집단폭행을 당하고 7시간 동안 감금되기도 했던 김종규 전 군수(62)는 “지금 같으면 유치 안 한다”고 잘라 말했다. 지역 인구는 줄고 경제는 쇠퇴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유치를 신청했지만 주민들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줬다는 것이다. 그는 “그 당시 사전에 방폐장에 대한 홍보를 하는 등 분위기를 잡아 갔어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부안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려는 노력 없이 예산 한 푼 지원하지 않아 섭섭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대체 에너지 개발을 주장해 온 ‘원전 반대론자’였다며 “이제는 부안 주민이 아픔을 딛고 하나 돼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안 사태 후 국회의원과 군수 선거에 출마해 두 번 모두 40% 안팎의 지지를 받았으나 2위로 낙선했다.

일본 주쿄(中京)대 나일경 교수(45·종합정책학부)는 일본학술진흥회의 과학연구비 지원으로 지난 10년 동안 방폐장 사태 이후 부안 지역사회 변화양상을 추적해 왔다. 나 교수는 “사태 이후 민(民)이 주인이라는 의식이 강화되면서 주민과 정치인 또는 관료와의 관계가 대등하게 된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자기 목소리만 강조하고 입장이 다른 사람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점은 부정적이다”라고 말했다.

부안=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지상시설은 모두 완공돼 가동 중이다. 방폐장 지하 동굴에서 700여m 떨어진 곳에 문무왕 수중왕릉이 있다. 경주=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 경주, 안전제일 공사중 ▼

17일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문무왕 수중릉이 보이는 해안 도로를 따라 5분쯤 들어가자 산 중턱에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가 보였다.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이 짓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공사 현장이다. 원자력발전소와 병원, 연구소 등에서 사용한 작업복이나 주사기, 시약병 등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보관하는 시설이다. 현재 공정은 94%. 관리센터 환경실험실 등은 이미 완공돼 가동하고 있다.



‘완벽한 안전’ 자신

방폐장 지상에는 장비수리실과 환경 실험실, 폐수처리시설 등 10개 시설이 있다. 핵심은 방사성 폐기물을 검사하는 ‘인수저장건물’이다. 현재 200L 드럼통 1000여 개를 저장하고 있다. 경북 울진원전과 경주 월성원전에서 나오는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저장소가 꽉 차 2010년 12월 이곳으로 옮겨왔다. 내부는 보안과 안전 통제가 삼엄할 정도로 철저하다. 방사성 물질 누출과 같은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5∼7m를 이동할 때마다 두께 15cm가량의 두꺼운 철문과 보안 장치를 거쳐야 한다. 2층에 올라가면 두꺼운 유리벽 안으로 드럼통이 쌓여 있다. 임일문 인수운영실 팀장(51)은 “건물 전체가 83cm 두께의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있다. 저장실 안으로 들어가려면 방사선을 차단하는 안전 복장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시설은 반입되는 방사성 폐기물을 하나도 빠짐없이 철저히 검사한다. 방사선 수치가 기준을 조금이라도 초과하면 반입하지 않고 해당 원전으로 돌려보낸다. 안전이 확인된 폐기물은 방사선 유출을 차단하는 특수차량에 실어 지하 사일로(방사성 폐기물 처분 공간)로 옮긴다.

공사가 한창인 사일로 입구는 운영 동굴과 건설 동굴 2개로 돼 있다. 운영 동굴은 완공 후 폐기물을 옮기는 통로, 건설 동굴은 향후 처분장 확장을 위해 뚫고 있다. 폭 7m인 반원꼴 터널은 25t 덤프트럭 2대가 오갈 만큼 널찍하다. 처분장까지 내려가는 지하도로의 길이는 1.5km. 트럭을 타고 10분 정도 들어가자 터널 양옆으로 사일로가 보였다. 해수면 기준으로 80m 지하에 모두 6개를 만든다. 한 개의 사일로에는 10만여 개의 드럼통을 보관할 수 있다. 천장은 지하수나 바닷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한 방수 공사가 한창이다. 높이 50m, 지름 30m 크기의 거대한 창고다. 사일로 안 드럼통이 보관되는 기둥 주변을 두께 1∼3m 콘크리트 방벽으로 다시 차단한다. 방폐장이 완공되면 60년간 운영한 뒤 사일로 내부를 돌과 콘크리트로 채운 후 밀봉한다. 리히터 규모 6.5(최대 160km에 걸쳐 건물을 파괴하는 수준)의 지진에도 견딜 정도로 튼튼하다. 김두행 토목건설 팀장(55)은 “사일로 방벽은 최소 300년 이상 외부 환경으로부터 방사성 폐기물을 격리할 수 있게 설계했다. 요새처럼 둘러싼 주변 암벽은 천연 방벽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방폐장 입구 주변 210만 m²(약 63만 평)에는 대규모 공원이 조성된다. 문무왕 수중릉으로 연결하는 산책길을 비롯해 녹차밭과 잔디구장, 전망대 등으로 구성된다. 이상훈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장은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방폐장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경주 방폐장 공사 장면

과학역사문화도시로 도약

한국수력원자력은 올해 1월 서울에 있던 건설본부를 경주시 동천동으로 옮기는 등 본사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경주시는 방폐장 유치에 따른 인센티브로 한수원 본사 이전과 양성자가속기 설치, 특별지원금 및 국비지원사업을 받았다. 폐기물 반입에 따른 수수료도 매년 80억 원 이상 생긴다.

한수원 본사 신사옥은 양북면에 짓고 있으며 2015년 준공될 예정이다. 한수원 건설본부는 원전 건설과 원전 수출 등을 맡고 있어 경주가 동해안 원자력 클러스터(집적단지)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방폐장 유치에 따른 지원 사업도 순조로운 편이다. 지난해 11월 착공한 보문관광단지 화백컨벤션센터는 한수원이 1200여억 원을 들여 내년 9월 완공할 예정이다. 원자 구조를 바꿔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 ‘산업의 손’으로 불리는 양성자가속기도 건천읍에 1조5000억 원을 들여 2018년까지 완성할 계획이다. 양성자가속기가 창출하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연간 3조5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최양식 경주시장은 “어렵게 유치한 방폐장이 이제 하나씩 구체적인 성과를 낳고 있다. 방폐장과 양성자가속기 등은 경주 발전을 위한 소중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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