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기업 “투자설비 반납도 요구받아”
북한이 개성공단 출입을 제한한 지 15일 만에 공단 입주기업이 해외 바이어로부터 납품계약 파기 및 투자설비 반환을 통보받은 첫 구체적인 사례가 나타났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대화연료펌프의 유동옥 회장(74)은 18일 동아일보 기자를 만나 “거래하고 있는 인도의 자동차 부품회사가 ‘개성공단을 못 믿겠다. 협력사를 바꿀 테니 투자한 설비(금형)를 반납하라’는 내용의 e메일 공문을 오늘 받았다”고 밝혔다. 유 회장은 대화연료펌프와 그 계열사인 유니월드오토테크를 통해 2005년부터 개성공단에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투자액은 125억 원에 이른다.
e메일에는 ‘이제부터는 자동차 부품을 100% 미국에서 사겠다. 일주일 안에 우리가 개성공단에 투자한 금형을 돌려주든지 금형의 자산가치에 해당하는 금액을 보상해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 개성 입주기업 “돈-수출처-기업가 정신까지 모두 잃어” ▼
인도 바이어는 또 e메일을 통해 “북한보다 (제품 단가가) 비싸더라도 안정적인 곳과 거래하려 한다”며 “이미 주문한 완제품을 납품하지 못하면 지체상환금을 물어내라”고도 요구했다. 이어 “(남한) 정부에 우리가 받은 피해를 보상해줄 수 있는지도 알아봐 달라”고 덧붙였다.
유 회장은 인천 연수구 송도동 대화연료펌프 본사에서 기자를 만나 “북한이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제품과 설비를 ‘인질’로 잡으면서 우리는 돈도 잃고, 수출처도 잃고, 기업가 정신까지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미 123개 공단 입주기업 대표 중 절반가량은 (개성공단에서) 마음이 떠났다”며 “공단 운영이 재개되더라도 다시는 개성에서 사업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피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초 개성유니의 생산설비를 증축해주겠다고 했던 인도의 또 다른 바이어는 “한반도 상황을 믿을 수 없다”며 “개성공단 대신 중국 저장(浙江) 성에 합작 투자하자”고 말을 바꿨다. 유 회장은 결국 인도 업체와 각각 100만 달러를 내 중국에 생산기지를 설립하는 내용의 계약을 17일 맺었다.
그는 “개성공단 제품은 싸고 품질이 좋아 해외에서 인기가 많았지만 이제 어느 바이어가 받으려 하겠느냐”며 “개성공단 제품은 ‘자랑거리’에서 ‘수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 회장은 “입주기업들이 거의 도산할 지경에 이르렀다”며 “정부는 철수를 원하는 기업들을 위해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수를 원하는 기업들에는 개성공단에 투자한 설비를 전액 보상해주고, 개성공단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달라는 요구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출입제한 초기만 해도 “대화를 통해 개성공단 가동을 재개해 달라”고 주장했지만 사태가 악화되자 적극적으로 보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유 회장은 현재 법인장 두 명만 남겨두고 나머지 직원들을 모두 철수시킨 상태다. 개성공단에는 10일 치 생산량만큼의 완제품이 있다. 그는 “3, 4일 안에 완제품을 갖고 나올 수 없다면 고객들을 붙잡아둘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인천=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