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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칼럼]윤진숙의 바다

입력 | 2013-04-22 03:00:00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바다를 책임져야 할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정말 어렵사리 미지의 바다 앞에 섰다. 혼자가 아니다. 그의 옆에는 대통령도 함께 섰다. 그의 바다경영 성적표는 곧바로 대통령의 사람 보는 눈에 대한 평가가 될 것이다. 끝까지 그를 내치지 않은 대통령도 옷자락 젖는 것쯤은 각오하고 있을 터다.

승선하기 전부터 시련을 줬던 바다가 무슨 일로 또 그를 흔들지는 알 수 없다. 바다는 오래 잠잠한 적이 없다. 그의 앞에는 적어도 다섯 가지 모습의 거친 바다(海)가 기다리고 있다. 어느 하나 녹록지 않다.

창해일속(滄海一粟). 그는 큰 바다에 던져진 좁쌀 한 톨의 신세다. ‘모래 속의 진주’에서 ‘진주 속의 모래’가 되면서 수장으로서의 권위를 잃었다. 해수부 소속 3800여 명과 해양경찰청의 1만여 명에게 자긍심을 돌려줄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자신이 진주라는 걸 증명하는 길밖에 없다. ‘모래 묻은 진주’ 같은 어중간한 평가로는 힘들다. 너무 유명해지는 바람에 기대치가 많이 올라갔다.

산진해갈(山盡海渴). 산이 끝나고 물이 마르면 더 갈 곳이 없다. 5년 만에 부활한 해수부가 그런 처지다. 게다가 ‘창조경제’라는 프레임을 하나 더 짊어져야 한다. 베테랑 관료들도 헤매는 요즘이다. 본인의 역량으로 흙을 퍼와 산을 만들고 물을 떠와 바다를 채워야 한다.

이지측해(以指測海). 손가락으로 바다의 깊이를 재려는 사람을 비웃는 말인데, 그는 어떤가. 그의 마지막 직책은 국책연구기관의 본부장으로 행정능력을 논할 만한 자리가 못 된다. 전공도 해양환경이어서 수산 분야나 해양영토 분쟁, 해양자원 확보, 해양산업 육성 등의 난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걱정이다. 장관이 모든 분야를 통달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전제가 있다. 일의 요체를 빨리 파악해 비전을 제시하고 부하의 역량을 한곳으로 결집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백천학해(百川學海). 모든 냇물이 바다를 배워 쉬지 않고 흘러 흘러 마침내 바다에 이르듯 부지런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는 더이상 학자가 아니다. 성과가 우선이다. 결국 선택과 집중의 문제인데 바로 이 대목에서 대통령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줘야 한다. 꿩 잡는 게 매라고 일만 잘하면 자질 시비도 줄일 수 있다.

안공사해(眼空四海). 주위를 깔보고 거드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 그는 벼락출세를 했다. 그런 사람은 임명권자에게는 고분고분하지만 아랫사람에게는 벼락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보상심리다. 장관은 힘이 세서 가는 곳마다 붉은 카펫 깔아 주는 부하가 즐비하다. 그런 분위기를 즐기다 보면 자신이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일각에서 그를 ‘루키즘(lookism·외모지상주의)’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난센스다. 루키즘과 관련도 없지만 일국의 장관으로 지명된 것만으로도 루키즘의 피해자가 아니라 루키즘을 극복한 사례로 보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그가 곤경에 빠졌던 이유는 알려진 대로다. 그는 청문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알리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본전마저 까먹었다. 청문회 속기록만 읽어봐도 금세 알 수 있는 일이다. 오죽하면 여당 의원조차 “참 많이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말까지 했겠나.

청문회에서 졸가리가 있던 발언은 아랫사람이 써 줬을 모두(冒頭)발언과 자신의 전공인 갯벌에 관한 것 정도였다. 나머지는 숫자에 약했고, 질문 요지에 둔했으며, 큰 그림을 놓친 데다 비전 제시를 못했다. 그러니 “몰라요”와 헤식은 웃음은 필연이었다. 며칠 전 대통령 업무보고는 연습을 많이 해서 무난히 넘어갔다고 한다. 장관 지명 이후 44일간은 공부를 제대로 안 한 게 틀림없다. 바로 코앞에 와 있는 장관 자리에 머릿속이 하얗게 됐던 것은 아닌지.

청문회가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고 청문회에서 강한 인상을(긍정적 의미에서) 주지 못해도 유능한 공직자가 되리라는 보장 또한 없다. 말만 번드르르하게 해서는 안 되겠지만 자신의 실력과 사고, 포부를 스마트하게 전달하는 것도 이 시대의 능력이다. 그래야 반대자도 설득하고 난제도 극복할 수 있다. ‘프레젠테이션’ 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그러나 그의 문제는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그는 청문회에서 ‘아마’라는 단어를 58번이나 사용했다. 겸손해서 쓴 말이 아니다. 기억에 대해, 사실관계에 대해, 소관 업무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리더로서는 중대한 결격이다. 빨리 고치지 않으면 ‘아마’ 우리는 그를 ‘아마 장관’이라고 부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배는 떠났다. 윤 장관이 항간의 예상을 ‘배신’하고 자신에 대한 평가를 긍정적으로 바꿔주길 기대한다. 그리하여 그가 고통의 바다인 고륜지해(苦輪之海)를 경험하지 않고, 파도가 잦아들어 세상이 편안해진다는 해불양파(海不揚波)를 이뤄 모래 속 진주가 아닌 바닷속 진주 창해유주(滄海遺珠)로 업그레이드 되면 좋지 않겠나.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