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한글 장편소설 ‘쌍선기’ 저자 친필 추정 원고본 5권 5책 발굴양승민 선문대 연구교수 발표
새로 발굴된 한글 장편소설 ‘쌍선기’의 제1권 첫 면(왼쪽). 우측 상단에 흘림궁체로 ‘썅션긔’라고 쓰여 있다. 오른쪽은 저자가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친필 원고본 5권 5책. 수록된 발문의 일부에는 본문과 필체가 똑같고 상당히 많은 정보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어 이 책이 저자의 친필 원고본이라는 결정적 근거가 된다. 양승민 교수 제공
19세기 한글 장편소설 ‘쌍선기(雙仙記)’의 저자가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친필 원고본이 발굴됐다. 현전하는 한글 고전소설 가운데 저자의 친필 원고본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이 작품은 국내 고전소설로는 유일하게 두 저자의 공동창작물임도 밝혀졌다.
쌍선기는 그동안 일본 동양문고가 소장한 한글필사본 5권 5책이 유일하게 전해져왔다. 학계에서는 문고본의 말미에 적힌 후기를 근거로 19세기 ‘한은규’라는 사대부 남성이 지은 소설이라는 주장이 유력했다.
흘림궁체로 쓰인 이 책에는 소설 본문과 함께 발문 1건과 필사기 1건도 수록돼 있다. 병진년(1856년) 가을에 쓰인 발문에는 성이 이, 자가 대여인 남성(이름 부분은 훼손됨)이 청운의 꿈을 이루지 못해 율리촌이라는 곳에 은거해 살다가 ‘한규’라는 이름의 갑부 친구와 함께 계축년(1853년)부터 병진년(1856년)까지 쌍선기를 지었다고 적혀 있다. 당초 7, 8권 분량으로 쓰려 했으나 헤어지게 되면서 미완성 작품이 됐다. 결국 이 씨가 혼자 친필로 쌍선기 원고를 마무리했고, 이를 며느리 윤씨에게 물려주었다고 돼 있다.
양 교수는 “발문과 필사기의 필체가 모두 본문과 똑같고, 발문은 상당히 많은 정보를 구체적으로 기록한 보기 드문 사례”라며 “이 책은 쌍선기 저자의 친필 원고본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규라는 사람과 함께 쌍선기를 쓴 이 씨의 정체는 누구일까. 흥미롭게도 쌍선기 친필 원고본과 함께 발굴된 고전소설 ‘창선감의록’ 한글 필사본 3권 3책에 그 실마리가 담겨 있었다. 창선감의록 한글필사본의 필체가 쌍선기와 일치해 이 씨가 필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창선감의록의 표지 배접지(표지를 단단히 하기 위해 종이 여러 장을 겹쳐 붙인 것)를 분리하자 편지와 한시, 물목 등을 적은 종이 쪼가리들이 나온 것. 편지의 수신자는 이씨 성을 가진 선달(先達·무과에 급제하고 아직 벼슬을 받지 않은 사람)로 돼 있다. 또 누군가 이 선달에게 ‘쌀 네 말을 꿔 달라’며 보낸 편지도 있다.
양 교수는 “쌍선기의 공동저자인 이 씨는 무과 출신이고 경제적으로 풍족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고전소설은 대부분 작자 미상인데 무과 출신이 소설의 저자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또 “기존의 동양문고본은 내용이 상당히 축약된 데다 등장인물 이름의 오류와 오탈자가 많고 필사자가 의도적으로 고쳐 서술한 부분도 많음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